노동 앞에서 글의 부끄러움
손끝에서 흘러나온 이 가벼움
단어를 뭉쳐 문장을 세우며
마치 의미를 다룬다 착각했던 시간들을 보았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자 한다
숭고한 노동의 새벽을
감히 글 따위가 날아다녔었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박스의 무게,
차갑게 얼어붙은 팔목의 떨림,
잠깐의 쉬는 시간도 허락을 맡아야 했던 현장
그 치열한 리듬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의 글은 얼마나 초라한가
박스를 옮기는 손들이 새기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생존
삶을 잇는 문장이 아니라
땀과 박동
나의 글은 바닥에 엎드렸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노동 앞에서
한 줌의 먼지처럼 흩어지는
공허한 말의 더미
쓰고 고치고 지운다 한들
그것이 이 벗겨진 손톱 끝 하나만큼이라도
진실했겠는가
내 문장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도 뜨거운 손을 가진
그들처럼 살아 숨 쉬었던가
종이 위를 더럽힌 나의 흔적이
박스 한 귀퉁이의 땀방울만큼도
무겁지 않음을 고백
오늘 밤, 내 문장은 부끄러워 울었다.
박스 속에서 깊게 눌어붙은 삶의 무게를
가볍게 보는 글을 써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