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니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나는 어느새 보수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불현듯 스스로를 돌아보니, 격렬했던 젊은 날의 급진적 열정은 사라지고, 이제는 피해를 최소화하며 조용히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약한 자들이 입게 될 상처와 희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가장 연약한 이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휩쓸리고, 가장 크게 상처받는 법이다.
급진적 진보가 약자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지는 광경을 숱하게 보아 왔다. 혁명이란 이름으로 불타는 길 위에서, 힘없는 이들의 고통은 쉽게 무시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점진적 진보를 갈망하게 되었다. 후퇴는 아니되, 현재의 자리에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나아가는 길. 그 길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것의 보수의 가치라고 배웠고, 이게 상식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내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일컫는 이들—지금의 정치판에서 "보수"라는 깃발을 들고 있는 그들은—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보는 혁명과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히틀러의 그림자와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말하는 안정과 질서는 단지 다른 이름의 억압일 뿐이었다.
나는 내 스스로의 가치관을 돌아보았다. 진정한 보수주의란 무엇일까? 그것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정치 지형을 바라볼 때 민주당이야말로 그나마 보수주의의 색을 띠고 있다고 느꼈다. 녹색당, 기본소득당, 진보당과 같은 이들이 비로소 진보의 길을 추구하는 세력이었다.
나는 여전히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기를 바란다.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뒤처지지 않으며, 함께 한 걸음씩 내딛는 그 길. 그것이 내가 바라는 세상이고, 내가 믿는 보수주의의 얼굴이다.
이제 그들의 피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면 같은 피는 흘리지 말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이제 조금 더딘 발걸음으로 나아가도 좋아질 시대이다.
예전 젊은이들은 그런 시대를 원해서 흘린 피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진보 쪽의 그들 당을 응원한다. 결국 가야 하는 길, 그러나 피해는 최소화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