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날 버려두고 도망친 엄마에게 감사하다
나는 무기력한 엄마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아이에게만큼은 절대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무게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폭력 앞에서 무기력한 엄마를 보며 자란 아이는 크지 못하고 작아지기만 할 것이다.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부당한 일에도 저항하지 못하며,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에게 맞춰주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게 될 테니까.
날 지켜줄 거라 믿었던 세상 단 한 명의 엄마가 무기력하다면, 그것만큼 절망적인 일이 또 있을까.
엄마는 아빠에게서 도망쳤다.
아기였던 나를 그 집에 남겨 두고 혼자 떠났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를 남겨두고 자신만 살았는지 어린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에게 버려졌다는 상처는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나를 묶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어쩌면 엄마에게 그 도망은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망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이었다.
그 도망이 없었다면 엄마도 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폭력적인 아빠를 보았지만 매맞는 엄마는 보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무기력을 남기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무기력한 아내가 되지 않았고 무기력한 엄마로 살지 않는다.
나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게 어릴 때부터 너무나 당연했다.
처음부터 기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게 내 삶의 기본값이었으니까.
그래서 기댈 곳이 없다는 절망이나 잃어버린 비극을
처음부터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게 지금은 오히려 나쁘지 않다.
어차피 처음부터 몰랐으니까,
나는 내 힘으로 걸어가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방식은 다르다.
나는 엄마처럼 도망치지 않는다.
엄마의 도망은 스스로 살리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나는 그 방식을 답습하지 않으려 한다.
도망치기보다 직면해서 이겨내는 법을 아이에게 보여줄 것이다.
회피가 아닌 싸움으로,
견디는 것만이 아니라 이겨내는 것으로.
내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엄마가 남겨준 것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자립이라는 뿌리를 남겼다.
이제 나는 그 뿌리 위에 나만의 방식으로 강해지는 나무를 키운다.
무기력하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에게도 무기력하지 않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