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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새벽

새벽은 밝아오는 것이 좋은데 싫기도 합니다

by 살라

아무튼, 새벽


새벽이 왔다
무자비하게 왔다

한밤의 공포와 싸워 겨우 맞이한 이 시간은
멍든 자국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야 만다
어둠 속에서는 가려져 있던 흔적들이
새벽의 빛을 만나면 숨을 틈도 없이
마주한다

시인들의 새벽은
고통을 견딘 자만이 맞이할 수 있는 빛이라 했던가
어둠을 뚫고 오는 희망의 빛이라 했던가

그렇지 않다
새벽은 고통을 견딘 자에게
찢어지고 긁혀 멍든 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무자비한 빛

다정하지 않은 고요 속에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또렷해진다
고통의 흔적들을 빛 사이로
적나라하게 끌어올린다

아무튼, 새벽
빛이 피어난다

무기력함과 분노,
용서하지 못한 기억들을 숨기지 않고
다시 맞선다
다시 싸울 힘을 가져다 준다

아무튼, 새벽
새벽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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