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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병원에서 깊이 했던 고민

by 살라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어떤 날은 귀엽고, 어떤 날은 우아하고,
어떤 날은 문제 앞에서 불꽃 튀는 혼구녕 내는 할머니,
어떤 날은 대범하게 인생 도전장 내미는 할머니,
어떤 날은 넉넉한 지갑으로 모두를 품는 할머니,
그런 팔색조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아프지 않고 늙고 싶다.
허리는 꼿꼿하고, 걸음은 여전히 가볍고,
웃을 때 깊어지는 주름마저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할머니, 귀여우세요"라는 말에
"그럼~" 하고 장난스럽게 윙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젊은 친구들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라는 말 대신,
"그거 나도 해볼래!"라고 말하는 할머니.
새로운 유행이 생기면 호기심 가득 따라 해 보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부끄럼 없이 물어보는,
오히려 더 재밌는 걸 발견해 친구들에게 먼저 알려주는,
세대 차이가 아닌 세대 공감이 되는 사람으로.

그리고 불의 앞에선 절대 물러서지 않는 할머니.
"그건 아니지"라며 단호하게 선 긋는,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 앞에서
"할 말 있으면 앞에서 직접 하라고!"
터진 성대로 팩트폭력 날리는 진정한 팀킬러.
틀린 건 틀렸다고, 옳은 건 옳다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목소리 내는 할머니.
인스타에 "오늘도 현실 팩폭했다 ㅋㅋ" 올리는,
그런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오늘은 내가 쏜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할머니.
가격표를 힐끗 보고도 망설임 없이,
"마음에 드는 거 다 골라"라고 말할 수 있는,
값보다 가치를 우선할 수 있는 할머니.

하지만,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은 신이 와도 손댈 수 없게.
내 울타리 안에서는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폭풍우가 와도 꿈쩍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범한 결정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뭐 어때, 한번 살아보는 인생인데"라며
남들이 미쳤다고 할 일도 웃으며 시작하는 할머니.
칠순에 번지점프를 하고,

팔순에 세계일주를 떠나는,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

언제든 짐을 싸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
세계 어디로든, 그 너머의 사후 세계로든.
"이제 가볼까?"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
늘 설렘 가득한 채로, 두근거림을 잃지 않은 채로.

그리고 마지막
사후세계로의 영원한 여행을 떠날 때도
남은 이들이 슬퍼하기보다
"할머니 또 어디 놀러 가셨네" 하며
기쁘게 춤추고 응원가를 불러주길 바라는,
떠나는 순간에도 축제를 만들어내는 할머니.

나는 그렇게,
팔색조 같은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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