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동자의 계절

가정을 떠받치는 노동자들이기에게 5월의 첫날을 기억해야 한다.

by 살라

농업에서 경공업으로,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중공업에서 IT로,

IT에서 플랫폼 자본주의로.


산업지형은 변했지만 노동자의 고통은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착취와 희생은 여전히 노동자의 몫이다.


봉제공장 재봉틀 앞에 검은 피를 토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이 있었다.

새천년이 지났지만, '클린룸'이라 불리는 독극물 작업장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반도체 공장의 청춘들이 있다.

세대는 달랐지만 고통은 여전하다.

철강, 조선, 자동차 라인 위에도 무명 노동자들의 목숨이 흘렀다. 용광로 곁에서, 회전체 옆에서, 절단기 아래서, 그들은 기계보다 먼저 닳아갔다.

아직도 학생인 젊은이들과 은퇴 후에도 노동을 벗어날 수 없는 늙은이들은 물류창고에서, 배달 플랫폼에서, 시간보다 빠른 '로켓'이 되어야 했다.


기계가 낸 소음보다 더 큰 비명이 들렸다.

분명 들었는데 죽지 않기 위해 모른 척해야 했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전가된 인간을 물건처럼 쓰고 버렸기에 버려진 물건이 되지 않으려고 인간이길 포기했다.


실습고등학생, 단체급식노동자, 물류창고 기사, 새벽의 배달원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쪼그린 노동이 울고 있다.


사무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IT업계의 새벽은 사람을 코드처럼 엮어 '열정'이라 포장된 야근으로 갈아 마신다. 콜센터의 직원들은 감정과 목소리를 긁어 바친다.


노동자의 피로 한국 경제성장의 대명사가 된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이름만 바꿨다.

그 안의 노동은 어제와 같고, 전태일이 불태운 몸으로 저항했던 1970년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기억한다.

쇳물 속에 사라진 청춘과 빵 기계에 끼어버린 삶, 컵라면으로 버틴 실습 고등학생의 꿈을 기억하고 있다.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피가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잔인한 내일은 동료를 잃은 슬픔조차 허락지 않는다

효율이 없으면 도태되고, 살아남으려면 몸을 갈아 넣어야 하는 시대다.

노동자의 권리는 어느 계절에 멈춰 섰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