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에서 본 가족주의
가족이라는 이름이 때로는 사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리나란 특히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는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희생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 빠지지 않고, 반대로 범죄자는 자신을 망친 이유가 가족이 된다.
화제의 드라마인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인물들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주로 표현됐다.
한국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감동받기도 했다. 꿈 많은 엄마는 그 꿈을 구체화시키지 못했지만 나름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냈고, 자식만큼은 하고 싶은 꿈을 펼치기를 바라며 뒷바라지했다. 아빠는 오로지 한 여자의 사랑과 자식을 지키면 되는 남자로 그려졌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헤어지는 이유도 완강히 반대하는 남친의 어머니를 자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슬퍼하기 때문에 헤어진 것이다. (드라마의 흐름상 그게 감동포인트니까)
그런데 유독 호불호가 나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나는 보다가 자꾸 답답해졌다. 엄마가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실현하는 과정이 나오길 원했다. 아빠가 가족을 위해 몸이 망가져가면서 아무 일이나 다 해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즐거운 일이든 취미든 찾아내는 과정이 나오길 원했다.
요즘은 실제로 50,60 나이대도 심지어 70대 어르신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취미를 찾는데 뭔가 즙을 짜내는 드라마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애써서 공감해야 하는 듯한 느낌.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볼 때도 그렇고, 한국 드라마를 볼 때도 한국은 특히 가족주의 정서로 감동포인트를 끌어낸다. 그런데 이게 양날의 검인게 스스로 잘못된 길을 선택해도 가족 때문이라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가족을 책임지고, 자녀를 건강한 시민이자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건 정말 부모의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걸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키우는 순간, 가족이 불행해짐을 알아야 한다.
태어난 아기 입장에선 본인이 원해서 세상에 나온 게 아니니까. 태어난 아기는 존재하고 싶어서 의지를 갖고 세상에 나온 게 아니기에 부채감이 없다.
부부가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길 원한다면 어려움을 각오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들의 의지로 작정한 것이다.
키우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얻는 것으로, 사랑을 주는 양육의 본능에 충실할 각오로 키워내는 것이다.
그게 희생이라는 감정으로 자녀에게 전가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희생이 맞나? 키우면서 얻은 게 더 많지 않나?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다. 키워내 보니까 그렇다. 희생이라 하기엔 부모가 얻은 기쁨과 성장이 더 크다.
또 요즘은 가족의 개념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혈연 중심, 남녀부부에서 벗어나, 동반자 부부 같은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생활동반자법도 논의되는 사회가 아닌가. 꼭 결혼이나 자녀를 가져야만 가족이 아니라 생활 공동체가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각 개인은 가족의 희생에 대한 부채감이 없어야 한다. 거꾸로 부모의 삶을 버리는 희생을 당연한 걸로 알고 받지 못했다는 결핍도 없어야 한다. 이런 변화가 개인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아닐까.
가족은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성장하는 관계여야 한다. 혈연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관계 속에서도 충분히 따뜻함과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