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날 선 종이 가장자리 같아서 무심코 찢으려다 손을 벤다. 그러다 좋았던 기억까지 함께 찢어져 나간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가위를 든다. 옛 앨범에서 낯선 얼굴을 오리듯. 사진 가장자리를 둥글게 자르듯.
처절하지 않게
성급하지 않게
빨리 찢고 싶은 화를 참고 절제된 손놀림으로 정확히 불행만 가위질한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좋았던 감정의 일부가 찢어짐 당하지 않도록
하루에 한 조각씩만 마음속 불행을 잘라낸다. 찢지 않고, 울지 않고 그저 오려낸다.
소리 나지 않게
흔적 남기지 않게
애초에 행복이란 말이 없었다면 이런 수고도 없었을 텐데
괜히 행복이란 말을 알아서, 나머지는 불행 같아서 가위질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오려내다 보면 마침내 여백이 생길 것 같다.
비교하지 않는 공간이,
숨 쉴 수 있는 틈이.
때로는 가위질하다가 멈춘다.
불행 안에 행복이,
행복 안에 불행이
섞여 있어서.
그래도 계속 오려낸다.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어도 조금씩 더 견딜 만한 모양으로
다듬어가고 있다. 남은 것들 사이사이로 바람이 통하기 시작했다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거나
그런 말 없이도
그냥 괜찮은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