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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우지정(雲雨之情) 날씨

by 살라

구름과 비 사이의 날씨


요즘 날씨가 운우지정(雲雨之情) 날씨다. 구름과 비가 정을 나눈다는, 그 고사성어를 떠올리게 하는 애매한 하늘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운우지정이라는 말은 중국 초나라 회왕의 꿈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왕이 꿈속에서 무산의 여신을 만나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신이 떠나며 말했다.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당신 곁을 맴돌겠습니다." 그렇게 남녀 간의 은밀한 정을 뜻하는 말이 되었지만, 나는 요즘 이 말을 다르게 읽는다. 구름도 비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상태. 쏟아질 듯 쏟아지지 않고, 갤 듯 개지 않는 이 어정쩡한 하늘 말이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공기가 축축하다. 비가 온 건 아닌데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다.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들고 나서는데, 하루 종일 한 번도 펼치지 않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우산을 놓는 순간, 창밖에서 빗소리가 난다. 타이밍을 놓친 것처럼, 내가 필요로 할 때 오지 않고 내가 안전해진 후에야 찾아오는 비.

광교 호수 공원을 산책하는데, 하늘이 어두워진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도 뛰어가려다 말고, 우산을 펼까 망설이다 말고, 그냥 계속 내 페이스대로 걷는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또 맑아질 거라는 걸 안다. 요즘 하늘은 늘 이런 식이다. 협박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 구름이 잔뜩 끼었다가도 금방 흩어지고, 햇살이 났다가도 이내 구름에 가린다. 오락가락. 왔다 갔다.

문득 이런 날씨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개거나 완전히 쏟아지는 날씨보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하늘이 더 솔직한 것 같다. 세상 어떤 관계도, 어떤 감정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으니까. 사랑인지 우정인지, 그리움인지 집착인지,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더 많으니까.

운우지정. 구름과 비가 만나 정을 나눈다는 그 말처럼, 오늘도 하늘은 결정하지 못한 채 구름과 비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나는 그 밑에서, 젖을 듯 말 듯한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우산을 펴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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