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랜턴
신께 기도한다.
죄를 사하여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 통증을 사해주세요."
가슴 한가운데가 무너진다. 밤마다. 숨 쉴 때마다.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죄가 문제가 아니다. 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이 아픔이 문제다. 영혼의 구원 따위는 나중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숨만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한다.
어둠 속에서.
사랑은 준비 없이 왔다.
랜턴을 들고 조심스럽게 걸을 준비도 없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을 각오도 없이, 그냥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돌아보니 그 사람이 서 있었다.
사랑하기 위한 연습이 되기 전에 사랑이 오면,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
교과서는 없었다. 매뉴얼도 없었다. '사랑을 준비하는 10단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떠밀리듯, 추락하듯, 사랑 안으로 들어갔다.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이 깊은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그래서 아팠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상처 주지 않는 법을 몰랐고,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몰랐다. 너무 가까이 가서 데었고, 너무 세게 껴안아서 부러뜨렸고, 너무 많이 원해서 질식시켰다.
연습 없이 온 사랑은, 그렇게 늘 아픈 걸까.
이별도 준비 없이 왔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말했다. "이제 그만하자." 그게 전부였다. 이별을 연습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심호흡할 틈도,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었다. 갑자기 바닥이 꺼졌고, 나는 추락했다.
등가교환.
사랑받은 만큼 아파야 하는 건가. 행복했던 시간만큼 불행해야 하는 건가. 웃었던 만큼 울어야 하는 건가. 우주의 균형이란 게 이렇게 잔인한 건가.
밤마다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고.
밖으로 나가면 또 사랑해야 하고, 또 다치고, 또 이별해야 한다. 차라리 여기, 이 어둠 속에 머물고 싶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그런데 누군가 랜턴을 들고 온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발소리도 없이.
불빛이 흔들린다. 작은 원형의 빛. 그게 내 발끝을 비춘다. 나는 움츠린다. 가지 말라고,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랜턴은 더 가까이 온다.
이제 내 무릎이 보인다. 구부정하게 웅크린 내 모습이 보인다. 부끄럽다. 이렇게 무너진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여기 있었구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신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사랑일까. 친구일까. 가족일까. 아니면 내 안의 또 다른 나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랜턴은 계속 나를 비춘다. 도망칠 수도 없다. 어둠 속에 숨을 수도 없다. 빛은 이미 나를 찾아냈으니까.
"통증을 사해주세요."
다시 기도한다.
죄가 아니라 통증을.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몸의 구원을. 형이상학적인 용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진통제를.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랜턴의 불빛이 조금 더 밝아진다. 이제 내 얼굴이 보인다.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입술은 바짝 말랐다. 머리카락은 엉망이다.
이게 나다.
사랑하기 위한 연습도 없이 사랑했고,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이별했고, 어둠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고 떼쓰고 있는.
"일어날 수 있어?"
랜턴을 든 사람이 묻는다.
모르겠다. 일어날 수 있을까. 다시 걸을 수 있을까.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일어날 수 없어도 괜찮아. 여기 앉아서, 같이 있어줄게."
그 말에 눈물이 난다.
나를 끌어내려는 게 아니라, 함께 있어주겠다는 것. 빛을 비추되, 억지로 일으켜 세우지 않겠다는 것.
위로였다.
등가교환이 맞는지도 모른다.
사랑한 만큼 아파야 하는 게 우주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행복했던 시간만큼 슬픔을 견뎌야 하는 게, 공정한 거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진실이다.
어둠 속에 있어도, 누군가 랜턴을 들고 찾아온다는 것. 나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것. 통증을 완전히 없애주진 못해도, 함께 아파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견딜 만하다.
사랑은 연습 없이 온다.
이별도 준비 없이 온다.
그리고 위로도, 예고 없이 온다.
어둠 속에서 랜턴을 든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앉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불빛을 켜놓고, 함께 어둠을 본다.
"아파?"
"응."
"많이?"
"많이."
"그렇구나."
대화는 짧다. 해결책은 없다. 통증은 여전하다. 신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랜턴이 있다.
랜턴의 불빛이 흔들린다. 작지만, 따뜻하다. 이 빛이 어둠을 다 밀어낼 순 없지만, 적어도 내 손이 보이게는 해 준다. 내 발이 보이게 해준다.
그러면 언젠가,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어둠 속에서도, 빛은 찾아온다는 것.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것.
통증이 영원하진 않다는 것.
그리고 등가교환이 맞다면, 이 아픔만큼 다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다음번엔 조금 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다음번엔 랜턴을 들고 있을 것이다.
다음번엔 내가, 누군가의 어둠 속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은 그냥, 여기 앉아 있는다.
랜턴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