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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우주다

오글거리게 썼던 육아일기

by 살라


아이가 아침밥을 먹다가 물컵을 쏟았다. 테이블 위로 번진 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행주를 들고 다가가다가 멈췄다. 물이 나뭇결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아이는 젖은 손가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아이가 지금 중력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액체의 성질을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운다는 건 우주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법칙을 세우고, 언어를 심고, 감정의 좌표를 그리는 일.


"뜨거워"라는 단어를 가르치려면 먼저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가야 한다. "따뜻해"라는 온도를 기억하게 한 뒤, 조금씩 온도를 올린다. 아이의 눈이 커지는 순간, "이게 뜨거운 거야"라고 말한다. 그제야 세상에 온도가 생긴다. 냉장고가 차가운 이유가 생기고, 겨울 코트를 입는 이유가 생긴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시간도 그렇다. 처음엔 그저 배고픔과 포만감만 포만감만 있었다. 하지만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다 보면 아이의 우주에 리듬이 생긴다. "저녁 먹자"는 말은 단순한 식사 제안이 아니라,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어둠이 오기 전 함께 모이는 시간이라는 안전한 궤도.

밤이면 아이는 내 품에서 잠든다. 작은 가슴이 오르내리는 게 느껴지고, 숨을 쉴 때마다 몸이 따뜻해진다. 나는 가만히 그 온기를 느낀다. 이 작은 몸속에서 세포들이 분열하고, 뉴런이 연결되고, 기억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걸.


어제 배운 단어를 오늘은 문장으로 만들고, 지난주에 두려워했던 그림자를 이번 주엔 손으로 만지려 한다. 우주가 팽창하듯, 아이의 세계도 매일 조금씩 넓어진다.


"엄마는 왜 울어?"

아이가 묻는다. 내가 눈물을 닦는 걸 본 모양이다.


"슬퍼서."


"슬프면 왜 울어?"


나는 대답을 찾다가, 그냥 아이를 안는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는 대신. 감정도 중력처럼 그냥 존재한다고 말하는 대신, 안아준다.


아이의 우주에 지금 새로운 별이 하나 떠오르고 있다. '슬픔'이라는 이름의 별. 아직 흐릿하지만, 언젠가 이 아이도 혼자 밤을 걷다가 그 별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되겠지.
슬픔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거라고. 아픔은 견디는 게 아니라 품는 거라고.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의 우주를 내 안에 들이는 일이라고.

식탁 위에 마른 물자국이 남았다. 나는 행주로 그것을 닦지 않는다. 잠시 후 아이가 손가락으로 그 자국을 따라 그릴 것이다. 물이 있던 자리를 더듬으며, 사라진 것들도 흔적을 남긴다는 걸 배울 것이다.

아이는 우주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우주의 끝을 확장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를, 아이를 정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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