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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찌 Feb 06. 2020

내 이름을 건 첫 재테크 특강

수강생에서 강사의 자리까지 354일

2019년은 내 이름 석자보다 '엠찌'라는 닉네임이 더 익숙했던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 몹시 힘든 일을 겪고 가입4년만에 온라인 재테크카페에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더 정확히는 한 번 출근한 뒤로 아직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게 좋겠다. 내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도움을 받고자 했었고, 그 과정에서 되려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할 힘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나의 상황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아파해주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았다.


이들에게 위로받고 힘을 얻은 것도 있지만,
동시에 나누어야 할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구나.


이미 나의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것이, 그들이 반환점을 돌때쯤 겨우 출발선에 다다를 것 같은 나의 모습이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픈 경험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기란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온라인상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2018년의 내 모습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자 꾹꾹 눌러쓴 이야기들을 카페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절약생활을 시작하고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돈을 쓰지 못해 스트레스 받는 것이 아닌,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모습이었다. 이는 즉, 나 자체로서는 특별한 물욕이 없었음을 뜻한다. 그리고나서 되짚어보니 나의 소비는 대체로 내가 아닌 누군가에 대해 이뤄지는 소비였다. 혼자였다면 사지 않았을 텀블러를, 친구가 사고싶어하니 나도 같이 구경해주고 괜히 나도 하나 사게 되었다. 혼자였다면 커피 한 잔 주문했을 내가, 친구가 곁들여먹을 케이크와 베이글을 보고 있으니 나도 샐러드를 하나 더 주문했다. 일차원적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었다. '육아'라는 외부적 요인이 앞서있기는 했지만 자의이건 타의이건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엑셀가계부를 작성하고 카페에 인증글을 올리고 다른 회원들과 소통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뭐 하나 구매하려 하더라도 이것 저것 열어야 할 앱들도 많고 결제수단도 뭔가 복잡하다. 잠깐이긴 하지만 내 뒤에 서 있는 다른 손님의 인기척이나 괜히 날 한심하게 보는 것만 같은 계산대의 직원도 나를 조바심나게 한다. 그나마 이런 따가운 눈초리는 혼자일때나 겨우 견뎌낸다. 지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는 아직도 절대 그럴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 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들과의 소통은 매우 즐겁다. 오늘 페이북 이벤트에 참여하느라고 집 근처 편의점 세 곳을 연달아 방문하며 0원 지출로 아이들 줄 과자를 한아름 구매했다는 얘기는 이들하고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매일 출석 랜덤포인트로 5포인트만 주던 앱에서 100포인트를 주는 날이면 잽싸게 캡쳐해서 인증샷을 올린다.


사이버 상의 100포인트는 현실에서의 100만원과 같다

by 앱테커들



나의 절약생활은 이렇다할 큰 고비없이 순풍에 돛을 단 듯 꼬박 1년을 지나갔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내 이름으로 된 첫 재테크 강의를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늘 '교사'였다. 딱 한번 '의사'로 적은 적이 있는데 그해엔 차태현, 김정은 출연의 MBC 드라마 '해바라기'가 큰 인기를 끌었었다.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대학 첫 학기에 자퇴를 생각했다. 학점은행제로 학사편입의 자격을 얻고 편입시험이 준비해서 사범대학에 입학하고자 함이었다. 부모님의 그런 얼굴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화가 났다기 보다는 실망과 안타까움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해본다. 긴 갈등이 지속되다가 결국 부모님이 물러나셨다. 근데 끝까지 날 막아설 줄 알았던 부모님이 물러서자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도 성숙한 어른스러운 결정을 하기 위해 몇날을 더 고민했고 그렇게 자퇴 헤프닝은 끝났다.



교사로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교직이수를 해서 정교사2급 자격을 얻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의 경우 2학년때까지의 성적으로만 교직이수자를 선발하고 1학년때 엄청난 방황으로 학사위기를 간신히 면했던 나는 2학년때부터는 늘 앞자리를 다투는 성적이었음에도 교직이수에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평점을 높이기 위해 재수강이나 특정 과목 포기 등을 할 수 있었던 일부 학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꿈은 접지 못했다. 교육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근 후 나의 시간이 확실히 보장되는 직장을 찾아 취업에 성공했지만, 취업한 지 1년만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나도 현실에 발을 완전히 담그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는 줄만 알았던 '교사'의 자리가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강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짙어졌다.



2019년 2월의 어느 날, 내 스스로 쌓아두었던 커다란 벽을 허물고 한 재테크 특강을 듣기 위해 강남의 한 강의실을 향했다. 신랑은 휴가까지 써 아이를 돌봐주며 나의 시간을 도왔고 그래서 더 값지게 썼던 3시간의 특강이었다. 이 강의가 내가 1년동안 꾸준히 가계부를 쓰고 절약생활을 하게 된 도화선이 되었다.



그리고 354일이 지난 2020년 2월 2일, 그 날의 그 강의실 단상에 내가 있었다.



강의 시작시간 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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