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2025.08.23
숙면 후 상쾌하게 기분으로, 이불에서 나와 창문 커튼을 젖히는 순간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일출의 빛을 받아 만년설을 뒤집어쓴 카즈베기 산이 불타오르듯 붉게 물든다. 지난번에 보았던 모습보다 훨씬 더 화려하다. 황홀한 그 순간을 놓칠까 싶어 서둘러 카메라를 들이댔다.
So amazing! So beautiful!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이미 성공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출의 빛은 산 정상에서 중턱을 지나 아래 마을까지 천천히 내려온다. 마치 물감이 물에 스며들 듯,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번져 나간다.
지난 방문 때는 보이지 않던 게르게티 교회도 이번에는 산 중턱에 또렷이 드러난다. 역시 심적인 여유가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다른가 보다. 이번에는 일출이 내려오는 매 순간, 한 장면 한 장면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카즈베기의 일출은 마치 거대한 공연 무대의 오프닝쇼 같았다. 경이롭고, 압도적이다.
〈카즈베기 산의 일출〉
근엄하고 자애로운 저 산 꼭대기에
하얀 머리 신령님이 내려오신다.
눈 덮인 산 봉우리의 형세가 그러하다.
굵고 깊은 산세는
위엄과 인자함을 한데 품고,
눈부신 태양신은
카즈베기의 옷을 한 겹씩 벗겨낸다.
일출의 금빛 선이
아래로, 다시 아래로 내려오고,
산 중턱에서는 즈바리 수도원이
고요히 균형을 잡는다.
찬란한 태양 빛에
마을이 모습 드러낸다.
굴뚝에서 연기 피어나고,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저 풍경 속에 빨려 들어가니
동화 속의 세상이 이러하랴.
신령님의 보호 아래 있는 저곳,
저기가 바로 천국이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 흐려지고,
화려하게 솟구치는 일출 앞에
내 마음은 동심이다.
화려한 일출의 여운을 뒤로한 채, 또 다른 명소인 주타 트레킹 코스로 이동한다(9시 출발, 24km).
오늘은 조지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중 하나로 꼽히는 카즈베기(Kazbegi)의 주타(Juta) 산을 오른다. 러시아 국경과 가까운 곳으로, 해발 2,000~2,700m 수준이라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1,950m)보다는 높다. 이 코스는 코카서스 산맥의 절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트레킹 루트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30여 분 달리자 차가 멈춘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아침도 든든히 먹었으니 이제부터는 걸어서 가보자.
간간이 흩날리는 흙먼지, 등산화가 바닥을 찍는 소리, 스틱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실선 같은 폭포가 보이고, 길 아래에서는 물 흐르는 굉음이 아득히 들려온다.
얼마나 걸었을까. 녹색 배경 위로 붉은 지붕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민가와 리조트가 층층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물은 요란하게 울부짖는다. 동화 속 풍경 같은 이 고지대 마을이 바로 해발 2,071m의 주타 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본격적인 트레킹 코스가 펼쳐진다.
가파른 언덕을 지나 차우키 언덕 직전까지는 큰 난이도는 없으나, 고산 지대라 금세 숨이 차오르니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일행은 줄지어 능선을 따라 걷는다. 길 위에는 말똥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어 마치 우리를 반기는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타(ZETA) 캠프(2,193m)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과 휴식을 즐겨도 좋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기로 했다.
졸졸 흐르는 물길을 지나고 등산화는 물을 튀기며 푸른 들판을 가른다. 군데군데 야생화가 산들산들 춤을 추고, 능선 곳곳엔 아직 녹지 않은 하얀 눈더미가 계절을 혼동하게 만든다. 한여름에 눈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우리는 쉬지 않고 걸음을 이어갔다.
넓은 초지에서는 소와 말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잠시 그들의 세상에 발을 들이는 기분이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가까워지며 산맥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니 빙하수라 그런지 발이 시릴 만큼 차갑다. 저 멀리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피프티 시즌(Fifth Season) 호텔도 보인다. 설산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 들어앉은 모습이 절묘하다. 혼자 여행이라면 하루쯤 묵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푸른 대지와 맑은 하늘을 벗 삼아 계속 오르다 보니 작은 물웅덩이 같은 차우키 호수(2,472m, 13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요한 수면에 비친 설산의 풍경은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한쪽에는 청보랏빛 용담화가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낸다. 놓칠세라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즐겼다.
이곳까지는 비교적 쉬운 코스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난이도 있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일행 중 일부는 여기서 쉬기로 하고, 절반의 인원만이 산 위쪽으로 향한다. 눈앞의 차우키 패스를 넘어 해발 3,300m 차우키 설산까지 오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녹음 짙은 대지와 파란 하늘 풍경은 좋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이 가빠온다. 힘들어하는 일행이 하나 둘 나타나자, 오른쪽의 가까운 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정상에 가까운 지점까지는 올라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언덕에 올라 아래 풍경을 내려다보고 하산하기로 했다. 더 이상의 구간은 전문 산악인에게 맡길 일이다.
적당한 산 중턱(2,606m)에 모여 앉아 뒤의 바위산에서 건너오는 기운을 받으며 우리만의 ‘사운드 오브 뮤직’을 부르고 사진도 찍었다. 이제 하산이다.
확 트인 초원길은 내려가는 길마저 아름답다.
그림자 지는 민둥산 봉우리들에게 태양은 마지막 채색을 더했다.
<동선 요약>
룸스 호텔 출발(09:00) → 주차장(09:30) → 주타 마을 도착(해발 2,071m) → 트레킹 → 중간지점(해발 2,606m) → 주타 마을(17:00) → 주차장(17:37) → 룸스 호텔 도착(18:07)
동영상 : 카즈베기, 주타 트레킹 (조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