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2025.08.24)
고리(Gori)로 향하는 길.
비포장 도로의 미세한 진동이 물결처럼 밀려오고, 이내 나를 조용한 졸음의 세계로 이끈다. 여행길에서의 단잠은 깊고 달콤하며, 그 어떤 호화로운 휴식보다도 값지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르고, 고리에 도착했다.
세계사의 굵직한 흔적을 남긴 스탈린의 고향인 만큼 이 작은 도시의 공기는 무거워 보인다. 스탈린 박물관에는 청년 시절 공산당 지도자로 활동했던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그의 성장 과정과 정치적 행보, 그리고 일상의 흔적들을 마주 할 수 있다.
잔혹한 독재자로 각인된 남자 스탈린에 대해서 이곳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독재자? 살인자? 폭군?… 혹은 고향이 낳은 인물이라는 데서 오는 복잡 미묘한 자부심?
그의 흔적을 따라 걸을수록 겹겹이 쌓이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자문하게 된다.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세계사에 굵직한 영향을 끼친 이름 면면이 하나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다음 목적지, 고대 동굴 도시 우플리치케로 향했다.
동굴의 도시, 우플리치케(Uplistsikhe)
절벽 위에 떠 있는 듯한 도시. 우플리치케를 상상하니 마치 거대한 신전이 오버랩된다. 사실, 우플리치케는 종교 도시로도 명성을 떨쳤고 몽골군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건재한 도시이다. 기원전 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거대한 암벽을 깎아 집을 만들고, 의식을 치르고, 삶을 꾸렸다. 지금은 황량한 동굴만 남아 있지만, 그 속에는 역사를 거치면서 살아온 이들의 숨결이 겹쳐져 있다.
바위 위의 바닥을 딛고 걸을 때마다, 그들의 고단했던 삶이 조금이나마 나에게 전해 오는 듯하다.
바람에 맞서고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삶을 이어가고자 했던 그들의 강인한 의지가 보인다.
깎고 또 깎아 만든 동굴 집, 그 틈 사이로 흘러드는 뜨거운 햇볕, 그리고 그들의 삶. 그 모든 것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때는 처절했던 삶의 현장이었던 이 유적지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바위 도시 뒤편으로는 포도나무 밭이 펼쳐진다. 척박한 조건에서도 뿌리내리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모습이 이곳 사람들의 강인함을 닮은 듯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고, 강아지들이 뜨거운 돌바닥에서 태평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이곳의 수천 년 역사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이 평화로운 모습이다.
보르조미(Borjomi), 숲이 주는 선물
오늘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보르조미다.
울창한 산림과 깊은 협곡이 이어지는 조지아의 대표적인 국립공원으로, 오랜 시간의 깊이를 품고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숲길을 걷는 동안, 맑은 공기와 부드러운 바람이 쌓였던 피로를 풀어준다.
보르조미 하면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연 미네랄 광천수이다.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황실과 귀족들이 찾았다는 그 물은 지금도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면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 유명한 약수를 마셔보지 않을 수 없다. 첫 모금에서 코끝을 찌르는 유황 향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혀끝에는 낯선 금속성과 깊은 미네랄 맛이 스며든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보르조미 광천수이다.
생소하지만 몸에 좋다니 또 한 모금, 그리고 또 한 모금을 마셨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솟는 듯한 기분도 든다. 수백 년 동안 왕족과 여행자들이 찾던 물을 지금 나도 이렇게 마시고 있다.
다만, 이 특별한 경험의 대가가 있었는지, 며칠간 장은 탈이 나고 원치 않는 모험을 하게 되었다,
이 또한 추억의 한 페이지이다.
보르조미는 맑은 공기, 깊은 숲, 치유의 물이 어우러진,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하나의 선물세트와 같은 곳이다.
동영상 : 잠시 멈춘 시간 속에서 고리, 우플리치케, 보르조미 (조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