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2025년 08월 26일
쉬카라 품에 안겨. (2025.08.26)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산, 쉬카라(Shkhara)에 가는 날이다.
해발 5,000m를 넘는 최고봉은 코카서스 산맥에서도 손꼽히는 위용을 자랑한다.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을 이루는 능선은 사시사철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Shkhara’는 현지 스반(Svan) 언어로 ‘아홉 개의 봉우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조지아어로 ‘아홉 머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만년설과 가파른 경사, 깊은 협곡이 이어지는 이곳은 전문 등반가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산이다.
초보 여행자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만년빙이 시작되는 해발 약 2,200m 지점까지다.
멀리서 바라보는 설산은 장관을 이룬다. 가득 펼쳐진 새하얀 만년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쉬카라의 초입에는 우쉬굴리(Ushguli) 마을과 언덕 위에 라마리아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 한편에 걸린 오래된 종은 고요한 산중에서 유독 인상적이다.
마을 곳곳에는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스반 타워들이 남아 있는데, 과거 외세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 지어진 대피용 탑이다. 지금은 전쟁의 흔적 대신 관광객을 맞이하는 평화로운 마을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골목길에 가득한 소 똥이며 소탈한 풍경들은 여전히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박한 풍경이 문득 어린 시절의 동심을 떠올리게 한다.
설산을 향하여 걷다 보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들이 길손을 반기며 여행의 의미를 더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 마음으로 모두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바쁘다.
마침내 만년빙에 닿자 웅장한 설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바로 아래에는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가득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멀리서 보던 설산과는 또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 미터 높이로 세워진 얼음 절벽은 마치 90도로 꺾여 잘린 듯한 형상을 하고 있고, 그 틈 사이로 두꺼운 적설의 속살이 드러난다. 내 키의 서너배도 족히 넘는 거대한 얼음이다.
얼음 아래에서는 우렁찬 물소리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며 위협적으로 흐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얼음 사이사이에 거대한 바위가 군데군데에 박혀 있다. 얼음이 녹아내리면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어 긴장감마저 감돈다.
만년빙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설산과 아래로는 노란 흙탕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 아래로 흘러간다.
이곳에서는 안전을 위해 만년빙과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곳까지만 접근이 허용된다. 낙석의 위험을 모르는 나는 모험심이 발동하여 바로 아래에까지 접근하여 보았다. 저 멀리서 고함소리 들려온다. 위험하니 떨어지라고…
돌무더기가 널린 평지에서 일행들이 옹기종기 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쳤다. 쉬카라 설산의 품에 안겨 먹는 점심은 그 어떤 식당의 음식보다도 맛있다.
하산길에는 돌탑들을 지나고 야생화를 벗 삼으며 빙하수가 흐르는 길을 따라 걸었다.
노란 흙탕물은 산 아래로 향하며 정화에 정화를 거쳐 결국 맑은 물이 되어 마을과 사람들을 적실 것이다.
오늘도 행복한 등산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간다. 이름모를 야생화에 작별을 고한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동영상 보기 : 쉬카라 의 품에 안겨 (조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