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몽골가자

몽골여행, 우기호수와 거란성터(3).

우기호수 별, 이동 중 초원의 볼거리

by JumongTV

별무리에 감동하며 별소동을 피웠더니 이내 새벽이다.

난로에 불지피고 몸 녹이니 몸이 개운하다..

이른 아침부터 호숫가를 걸었다.

쌀쌀한 기운 감도는 아침의 호수는 참 고요하고 평화롭다.

안개 자욱한 인적 없는 호숫가 저편에서 철새들 날갯짓하며 분주하다.

이곳 우기 호수는 철새들의 요람지로 조류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또한 희귀 어종이 서식하는 호수로 국제 습지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석양과 일출 그리고 별관측지로 또한 훌륭하게 감상 가능 한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은 우기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울란바타르에서 이곳까지는 30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호수까지 오고 가는 길은 비포장이나 조심 운전하면 45인승 버스까지 진입이 가능하다.

하러허럼에서 이곳 우기호수까지 오는 길 중 빌게카칸 박물관까지는 포장도로이다.

이후는 비포장 도로로 달려야 한다. 그리고 산정상을 넘으면 우기 호수가 아래로 펼쳐진다.


일행은 간단한 빵과 커피로 조식을 대신하고 다음의 목적지인 거란 성터로 향하였다.

초원길을 3시간 정도 가면 포장도로가 나오고 바로 유적지가 나온다.

초원길을 달리는데 성인 몸체만 한 독수리가 저 멀리에서 날개 움츠리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주변에는 시커먼 까마귀 같은 조류 떼가 무리 지어 군데군데 자리하고 그리고 일부는 퍼득퍼득 날갯짓하며 맴돌고 있었다.

우와... 몽골 오가면서 이처럼 큰 독수리는 처음 봤다. 내 몸보다도 크다.

차에서 내려 접근할까도 했는데 생명의 위협감이 느껴져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이 독수리의 어마어마한 발톱에 잡히면 꼼짝도 못 할 것 같았다.

독수리는 죽은 말의 사체를 뜯어먹고 있는 중이었다.

또 다른 작은 새들은 독수리 주변에서 자신들의 먹방 순서를 기다리는 듯했다.

다큐맨터리로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음이다.

또 얼마나 갔을까 목동의 마구간이 나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목동은 갓 출산한 어린 염소와 양들을 한 우리에 모으고 있었다.

어미들은 새끼들 걱정에 우리 주변에 모이면서 울먹이고, 어린 가축들도 엄마 찾아 울먹이고 하면서 온통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생명 탄생의 계절인 만큼 새끼들이 진짜로 많았다. 장관의 연출이다.

목동은 뭔가 파악이 다 끝났는지 바로 새기들의 우리 문을 열었다.

그러자 새끼들 쏜살같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각기 어미를 찾아 나섰다.

정말로 신기한 광경이다. 내 눈에는 그놈이 그놈 같고 도무지 구분이 안 가는데 어미도 새끼도 서로 간에 잘도 찾는다.

하도 신기해서 목동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 많은 새끼들과 어미를 구분할 수 있냐고?

목동 말한다. 자신은 다 알고 있다고.. 그러면서 어미를 못 찾고 헤매는 새끼 한 마리를 들고 어미 곁에 던져주자 어미 잃은 새끼는 서러움도 잠시 이내 젖꼭지를 힘차게 물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이어지는 이 시기 몽골 초원은 바쁘다.

약동의 봄기운에 여기저기서 출산 이어지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지축은 요동친다


옛 거란 성터에 도착하였다.

거란(요) 시대의 도자기 등 유물이 발견되었다 하여 거란 성터라 한다.

또한 그 이전에는 위구르 제국의 수도이기도 하다. 초원 위에 방치되다시피 한 성터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유목민은 성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초원 위에 성터가 자리하고 있다.

거란족은 반목반농을 하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또한 몽골족에게 거란족은 같은 몽골계로 분류하고 있다.

칭기즈칸의 명제상으로 야율초재라는 인물이 있는데 역시 거란족 왕족 출신이었다.

거란 왕족의 성씨는 "야율"인 듯하다. 왕들 앞에 야율.. 이 붙는다. 야율아보기..야율대석...야율초제...

몽골 초원을 달리다 보면 곳곳에서 유물을 목격하곤 한다.

한국에서는 국보급으로 애지중지 보존할 것 같은데 이곳에 몽골에서는 그저 방치다.

이 역시도 유목민의 특성일까? 방치...

이 때문에 유물을 발견하고 이와 연결된 사료를 찾고자 하여도 쉽지 않은 곳이 몽골이다.

일행과 함께 파손된 두툼한 성벽을 따라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성벽이라기보다는 무너진 담벼락처럼 보이고 흉가의 의시시함도 느껴진다.

무너저 내린 성벽의 돌과 잡초들 그리고 곳곳에 가축의 변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인적 드문 이곳에서 인기척에 놀란 들쥐들은 잽싸게 토굴 속으로 몸을 숨긴다.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의 방치다.

무너진 성곽에서 100여 미터정도 나가면 돌탑이 있다. 축조 방식은 벽돌전탑이다.

이 양식은 중국의 동북부 요녕성에가면 볼 수 있다. 모두 요나라 후기 양식들이다.

요나라? 거란족? 혼돈이 있을 수 있다. 모두 같은 계통이다.

10세기 경에 지금 중국의 동북부에서 거란족의 야율아보기라는 걸출한 부족장이 출현하고 부족을 통합한다. 그리고 대륙의 지배자 명분으로 중국식 연호인 요를 써서 요나라라 칭하게 된 것이다.

중국 사서에서도 이를 정복왕조라 한다. 즉, 한족이 아닌 이민족 정권을 가리킴이다.

거란족은 우리 한국인에게도 익숙하다. 우리 발해를 멸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요나라는 금나라와 송나라에 멸망을 당하게 된다.

요나라 말기 요나라 왕자 야율대석은 북쪽으로 도주를 하게 된다. 물론 많은 신하와 함께 이동한다.

그때 즈음에 이곳 북방으로 밀려들어오고 그때 당시에 이곳에 거란 성터를 축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 요나라 말기 요나라 왕자 야율대석이 북쪽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넘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중앙아시아에 카라키다이(서요) 국을 세우고 어마어마한 세를 과시하다가 칭기즈칸에 의하여 멸망하고 사라지게 된다.

온갖 상상 다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았다.

일행 중 1인이 관리인 찾아내고 불러와 성터 입구에 있는 건물의 잠긴 문을 열어 달라고 하였다.

조그마한 박물관이다. 나의 유년기 시골집의 별채와 같은 조그마한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고와 같은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발굴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 몇 점이 초라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설명도 없고 하여 대충 보고 나왔다.

허기짐에 식사 할 곳을 찿았다. 다행이 이곳에서 10분여 거리에 나름 현재식 호텔이 하나 있다.

호텔 식당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시골 식당이다.

몽골에서는 호텔이라고 하여 한국의 여관 여인숙 호텔 이런 개념의 분류가 아니다. 숙소가 곧 호텔이다.

이 호텔은 예전에 흡수골 호수 가던 도중에도 묵었던 적이 있는 익숙한 호텔이다.

일행들과 함께 몽골식 양고기 칼국수 한그릇 거뜬히 비우고 울란바타르로 향하였다.

이제 250km만 달리면 울란바타르에서 편히 쉴 수 있다.

200여키로를 달렸을까? 호스타이 간판이 보였다.

호스타이는 몽골의 전통 말 타카의 보존 지역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예전에 이곳에 탐방차 온적 있는데 기대했던것 보다 실망이 커서 여행객에게 추천은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해질무렵 타카(전통말)가 목을 축이러 초원 능선 아래로 내려오는데 관광객들이 멀리서 이런 말을 멀리서 구경을 한다.

차라리 그냥 말위에 올라타고 대 초원을 질주하고 말 지언정 보일듯 말듯 하는 저멀리의 말 몇마리 감상하는 그런 스타일은 나의 적성에는 맞지 않는듯 하다. 이곳 호스타이처럼 여행 상품이 개발은 완료 되었으나 오픈을 하지 않는 상품군들이 다수 있다.

그래도 호스타이 간판을 보면 반가운것이 있다면 조금만 더 가면 울란바타르라는 신호이다.

가자..가자..어서가자..울란바타르로!


이번 중부지역 투어 인스펙션중 우기호수의 캠프 체크를 하여야 하였으나 아직 오픈을 하지 않은 관계로 볼 수 없었다.

그 점 외에는 모두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흥할 것이고 안주하는 자는 쇠퇴할 것이다” - 톤유크-


우기호수별 쏟아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몽골여행, 하러허럼에서 우기호수까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