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르 티무르와 사마르칸트

4일째(9월 9일) 1부 : 우즈베크스탄, 사마르칸트, 티무르

by JumongTV


사마르칸트!!

역사도시 사마르칸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은 “아미르 티무르”다.

우리는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의 역사는 쉽게 접하기에 익숙하다. 하지만 아미르 티무르 하면 생소하다. 우리의 주변국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관을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인물이다.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 돌게 될 관광 유적지는 대부분이 그와 관련이 있고 실질적으로 이 도시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이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그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티무르는 투르크어로 '쇠'를 의미한다. 이제부터 강철장군 티무르에 대하여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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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년 터키의 앙카라 부근에서 25만의 두 진영에서 세기의 결전이 벌어진다. 혜성처럼 나타나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아미르 티무르 군대와, 유럽 십자군을 괴멸시키고 서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신흥강국 오스만 제국의 술탄 보야지드와의 일전이다. 결과는 아미르 티무르의 완벽한 승리다. 숨죽이며 결과를 지켜보던 유럽인들은 새로운 영웅의 등장에 언제 자신들에게 칼을 겨눌지 모르기에 긴장을 하였다. 하지만 아미르 티무르는 앙카라 전투를 통하여 그의 이름만 그들에게 각인시키고 그 이후 한 번도 유럽으로 향하지 않았다. 티무르의 목적은 실크로드 복원을 통한 유럽과 아시아 간의 국제 무역을 활성화시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실크로드는 화려하게 부활하였으나 얼마안가 티무르 제국의 몰락과 오스만 제국의 재부활로 인하여 실크로드는 다시 막히게 된다. 이에 지속적으로 아시아 진출을 꾀하던 유럽은 육로를 포기하고 해양진출을 도모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오스만의 실크로드 차단은 새로운 해양 강국을 등장시켰으며 해양로를 개척한 서유럽은 제국주의적 무역구조를 통하여 급성장하게 된다. 이는 현재까지도 유사한 형태의 힘의 패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세계의 축을 흔들었던 세기의 영웅 아미르 티무르의 전과(戰果)를 들여다보자. 그의 유년시절부터 들여다보자. 아미르 티무르는 몰락한 몽골계 명문가 바를라스계에서 태어났다. 티무르의 혈통에 대하여 다양한 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몽골인의 혈통이 맞는 듯하다. 그는 코란을 읽고 낭송하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지적 호기심 가득한 무슬림으로 성장하였다. 아버지의 배려로 몽골계 귀족회의인 쿠릴타이에 참석을 하면서, 그의 무예와 역사 지식은 지역 명문가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여 그들의 부하로 등용되기도 한다. 출세와 시련을 동시에 겪는 등 담금질된 그의 인생은 더욱 강한 전략가로 성장을 하게 된다. 두 명의 여인과 결혼도 하게 된다. 첫 번째 부인은 아버지의 소개로 그리고 두 번째 부인은 친구인 후세인의 누이이다. 본격적인 성인무대에 등장을 하게 되는 그는 백성의 뜻이 신의 뜻보다 강하다는 것도 그의 경험을 통해 직접 느끼게 된다. 전장에서 팔다리에 상처를 입기도 하는 등 격렬한 전투를 통하여 세를 확장하여 나간다. 그의 친구이자 매제이며 최고의 정적이었던 후세인의 항복으로 티무르가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제거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정복전쟁이 시작된다. 이로써 중앙아시아에서 그의 나이 33세에 티무르 제국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를 경제 문화의 중심 도시로 생각하였다. 제국의 수도인 셈이다. 그는 전장에서 데려온 포로중 건축 기술자들을 선발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도시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도시가 사마르칸트이다. 사마르칸트라는 도시는 이전부터 실크로드의 중간 도시로 존재하였으나 몽골 칭기즈칸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파괴된 이 도시를 티무르 때 완전히 다른 형태의 이슬람 양식으로 재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오늘날의 아름다운 도시 사마르칸트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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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된 설명에 사마르칸트는 칭기즈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하였다. 추가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시 중앙아시아는 호레즘이 지배하고 있었다. 칭기즈칸은 그들과 외교관계를 원하였고 2차례 사진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2번다 수행원을 죽이고 사신으로 참여한 대표만이 처참한 치욕스러운 몰골로 돌아왔다. 이에 복수를 결심한 칭기즈칸은 군대를 출병시켰으며 중아아시아 서역을 향하여 거침없는 진격을 하였다. 이때 지나게 되는 지역이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이다. 부하라는 파괴를 면하였으나 사마르칸트는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한편 칭기즈칸에 쫓기던 호레즘의 술탄은 계속 도망가다 부하들에게도 버림받고 카스피해 조그마한 섬에서 쓸쓸히 최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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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화려한 제국을 세운 티무르는 몽골제국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으나 가는 도중에 병사한다. 사인이 감기로 알려지고 있다. 보통 감기가 아닌 오늘날의 코로나와 같은 매우 특별한 독감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살아생전 티무르의 야망은 자신을 수반으로하는 칭기스칸제국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티무르 제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지속적으로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갔다. 오늘날의 인디아 이전의 제국이 이름이 무굴 제국이다. 무굴? 몽굴? 몽골.. 그렇다 무굴이 곧 몽골인 것이다. 예전에 인도에 방문하였을 때 무굴제국의 유산 타지마할을 보고 쓴 글이 있어 이곳에 옮겨본다.


- 타지마할 방문기 (2019.04.08)-

타지마할! 무굴 제국! 우리가 현재 인도로 알고 있는 이곳 까지도 몽골의 영향력은 강력했다..

몽골 제국의 후광과 재현을 목표로 현 인도 지역을 점령하며 출범한 나라가 무굴이다. 흰두어로 무굴이란 몽골이다. 1857년 영국에 의하여 무굴 제국이 멸망하였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무굴은 강대 제국이었다. 티무르 시절 중아아시아는 칭기즈칸의 차남 차가이다이가 세운 차가이다이칸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정통성이 필요했던 티무르는 차가이이다이의 손녀 비비하눔과 결혼하여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내세우게 된다. 그의 자손 중 5대손이 바부르인데 그가 무굴 제국을 세우게 된다. 무굴 제국 중 샤자한이란 왕이 있었는데 그는 지나친 로만티스였던 것일까? 왕비를 과하게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왕비는 전쟁 수행 중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하고 만다. 이네 못 잊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 그녀를 기리게 되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타지마할이다. 이후 샤자한은 그의 세 번째 아들의 쿠데타로 타지마할이 보이는 장소에 감금당하게 되며 죽어서는 왕비 곁에 함께 묻히게 된다. 이후 무굴 제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넘어가게 되며 1947년 인디아로 독립하게 된다. 그곳이 오늘날의 인디아(인도)이다. 인도란 흰두어로 힌두 란 말이다. 즉 인디아는 힌두 종교의 연합체로 독립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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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급부상하는 인디아 이전의 국명이 몽골(무굴)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미적 완성에 감동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름을 즐기는 것인지?

타지마할 지붕(돔) 주위를 맴도는 새떼무리 날개 짓 고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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