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모르고 시작한 여행업과 몽골 랜드를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업자로 있을 때 외국인 멘토의 제안으로 여행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평소에 존경하던 한국인 멘토의 제안으로 몽골 랜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사의 경력 없이 시작하다 보니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나에게 주변인들은 측은지심과 용기 그리고 격려를 함께 보내 주었다.
몽골 랜드를 선언하고 몽골 오지를 누볐다. 빈 상점에 상품을 채운다는 심정으로 여행상품 개발에 몰입하였다. 오지에서의 그때그때의 상황을 지금 돌이켜 보면 아찔했던 기억들에 느낌이 새롭다. 불빛 없는 어두운 밤에 길도 없는 초원에서 방향 감을 잃었을 때에는 별자리를 이용하여 목표점을 정하여 이동하였고 현지인 일행들과의 언쟁과 그로 인하여 발생한 격투기는 목숨이 담보되었다는 것도 훗날에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과감하게 말한다. 내가 보유한 몽골의 상품은 목숨을 걸고 개발하였으며 상품 하나하나에는 나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그리고 무형인 여행상품에 너무 많은 비용이 투자되었다는 것도 이후에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계속 투자하여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혼이 없는 상품은 그저 물체일 뿐이다. 상품에 영혼을 채우자는 마음으로 몽골 관련 서적들을 모조리 사들여 틈틈이 하는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한 독서는 몽골의 기본 정보습득을 넘어섰다. 징기스칸기를 넘어서 흉노족부터 시작하여 선비족 유연족 돌궐족 위구르족 거란족의 요 나라 말갈족의 금나라 그리고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까지의 방대한 유목민사 전체의 공부로 이어졌다. 오지 탐험의 실질 경험과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의 발로는 몽골에 관련하여 자신감 충만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몽골을 알리는 몽골 알림이가 되었다.
아직까지 많은 한국인들에게 몽골은 미지의 세계이다. 혹한지역인 알래스카 얼음집에 대하여는 막연한 동경심이 있으면서 같은 추위권인 몽골에 대하여는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에게 몽골은 오랑캐와 약탈등의 단어로 표현되듯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리고 관심권 밖에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타임지는 과거 일천 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인물로 몽골의 칭기즈칸을 선정하였다.
1206년 칭기즈칸이 부족을 통합하였던 시기부터 시작하여 그의 손자가 세운 원나라가 사라질 때까지 162년 동안은 몽골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지금은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하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지만 당시에 몽골은 천하무적 유일무이의 초강대국의 지위에 있었다. 과거 어느 나라도 몽골만큼 광활한 영토의 확보와 국제 자유무역을 왕성하게 활성화시킨 국가는 없었다.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책 속의 주 내용은 원나라의 발달된 문명을 배경으로 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콤롬부스는 동방견문록을 항해 시 휴대하며 심독 하였고 스페인 국왕의 칙서를 원나라의 황제에 전하려 가다가 들른 곳이 지금의 아메리카였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아메리카가 인도인줄 알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인디언이라 불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는 원나라가 멸망한 지 백여 년 후의 일이었다.
몽골국 이전의 역사에서도 몽골초원은 투르크제국과 위구르제국등의 중심 무대였으며 중국은 오랑캐라 여기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공을 바쳐 평화를 유지하였고 때로는 그들의 군사력을 빌리기도 하였다. 이처럼 과거 한때 위대하였던 제국을 그저 오랑캐의 나라로 가벼이 치부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중국사관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몽골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며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흥미를 누릴 수 도 있다. 또한 몽골인은 지구상에서 한국인과 가장 유사한 DNA와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일단 몽골에 가면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 놀란다. 언어도 비슷하다. 알타이 산맥의 동쪽에 주류하였던 족들이 사용하였던 언어라 하여 우랄알타이어라 구분하는데 이들은 통사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한국어 몽골어 터키어 일본어가 이에 해당한다.
몽골어와 한국어는 비슷한 단어들도 많다. 우리말 “고아“라는 단어가 있다. ”곱다 “ ”이쁘다”이다. 몽골의 칭기즈칸의 시조모로 알려진 ”알란고아 “가있다. 우리말로 하면 아름다운 알란이란 말이다. 이외에도 몽골인과 대화하다 보면 쵸큰 쵸큰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말 ”조금“과 같은 말로 쪼금으로 들리기도 한다. 몽골에는 한국어를 빠르게 습득하고 한국인처럼 구사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언어의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몽골인 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가 한국이며 실제로 최대 방문국이 한국이다. 그들은 한국음식과 문화에도 바로 적응을 한다.
우리도 몽골인들을 직접 만나보면은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한민족의 기원이 바이칼호수 일대의 부리야트족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듯이 몽골인은 우리와 상당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알고 보면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이웃국가가 몽골인데 그동안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 한국인들의 몽골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몽골에 다녀온 많은 한국인들은 이구동성 오염되지 않은 몽골 대자연에 감탄한다. 몽골에는 자연에 순응하고 공존하는 동물과 유목민이 있고 초원이 있고 사막이 있고 그리고 바다와 같은 호수가 있다. 이 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비경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오로지 자연의 것이다. 인간은 잠시 태어나 자연으로 귀의할 뿐이다. 이 어마어마한 대자연을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여를 움직이면 경험할 수 있다. 인디아나죤스의 영화 주인공처럼 마치 탐험가가 된 듯 한 착각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몽골이다. 이처럼 다양성을 두루 갖춘 몽골에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여 대자연의 왕성한 기운과 정화된 환경에서 힐링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몽골에서 호연지기를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