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른이 되어갈 때.
영화는 줄리(매들린 캐롤)의 옆집에 브라이스(콜런 맥올리프)가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어린 7살 꼬마 줄리는 브라이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이삿짐 나르는 걸 돕겠다고 말하고, 집에 들어가는 브라이스를 따라가기도 한다.
풋풋한 10대 소년소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장면이 갑자기 브라이스의 시점으로 넘어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줄리는 브라이스가 자신을 좋아하지만 부끄러워서 아닌 척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브라이스는 줄리를 부담스러워한다.
영화는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두 남녀의 모습을 시종일관 진지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브라이스가 뒷자리 앉은 줄리가 킁킁대며 자신의 냄새를 맡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때, 줄리는 그에게 수박 냄새가 난다고 좋아하며 몰래 맡았다고 착각하는 장면에선 정말이지 하하하 소리 내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좀 유별나 보일 수도 있는 줄리지만, 귀엽고 특별한 아이다. 그녀는 사춘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생각이 많고, 깊다. 브라이스가 보기엔 이해 안 되는 이상한 아이일 뿐이지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른이 돼갈 때 가장 잔인한 건, 여잔 남자보다 성숙하고 그 성숙함을 견딜 남잔 없다는 것이다.
아! 무릎을 탁 쳤다.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를 이렇게 간결하고 완벽히 짚어냈다니.
흔히들 미성숙해서, 사랑에 서툴러서 첫사랑이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녀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각과 행동이 변화하는 속도의 차이에 있다.
여자는 남자의 유치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자는 여자의 유독 많은 생각을 버거워한다.
플립에서도 줄리의 성숙함을 브라이스는 알지 못한다. 다 큰 어른이 보기엔 줄리의 모습이 어른스럽고 빛나 보이지만, 또래 남자아이 눈엔 그저 특이한 아이로 보인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남녀의 성장 속도가 같고, 오해는 반드시 억측이 아닌 대화로 풀어나간다면.. 완벽해질까? 혹은 시시할까?
살짝 어긋나고, 오해에 상처받고 아프고, 성숙하고, 그러면서 사랑에 빠지고, 그런 평범하고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 그건 마법 같은 일이다.
줄리와 브라이스가 서로 사랑에 빠지든 빠지지 않든, 이 영화는 그런 결말과는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
브라이스가 사랑에 빠진다면, 줄리의 성숙함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에 빠져서 성숙함마저 사랑스러워 보이는 걸까?
브라이스가 영영 줄리를 이상한 아이로 기억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실 그게 가장 현실적이다.)
먼 훗날, 브라이스는 그때 꽤 유별나 보이는 여자아이가 사실은 좀 특별한 아이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볼 날이 올 것이고, 줄리 또한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남자아이의 모습이 사실은 그게 아니었구나라고 알게 될 것이다.
나무보다는 숲이 보이는 어른이 되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