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것도 전진이다.
힐링이 필요했다. 망설임 없이 리틀 포레스트를 선택했다.
일본 영화로 이미 보았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알아서,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 초록이 주는 싱그러운 여름 시골길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며, “쌀과 사과가 유명한 작은 시골마을이다. 마을에는 가게가 없어서 간단한 물건을 살래도 읍내까지 나가야 한다. 갔다 돌아오는 길만 해도 족히 사오십 분을 훌쩍 넘을 때가 많다.”로 시작하는 주인공의 내레이션도 같았다.
일본 영화를 볼 때 저게 뭔가 싶어 가만히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특별한 내용 없이 계절이 흐르면서 첫 번째 요리, 두 번째 요리 번호까지 매겨가며 끊임없이 요리하는 모습이 나와 대체 이건 무슨 영화인가 싶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지루하지 않았고, 계속 보게 됐다. 심지어 다음 요리는 뭘까 궁금해하면서. 우리나라와 달라 생소한 음식은 맛이 궁금하기도 하고, 아는 음식은 얼추 맛이 그려지기도 했다.
결말을 아는 영화를 본다는 건, 기대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편하게 볼 수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색과 정갈한 음식이 기분을 달래줄 것을 바라며 영화에 몸을 맡겼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왜 왔냐는 친구의 말에 “배고파서”라고 말하며 직접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지친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랜다.
며칠 있다가 바로 올라갈 거라면서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도록 고향 집에 머물렀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여전히 배가 고파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서?
어느 날 재하(류준열)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서울 간다 간다 아주 입에 달고 살던 애가 가을갈이는 아주 오부지게 하시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는 일.
그건 참으로 아프고도 낯설다.
마치 예방접종을 맞으러 가야 하는데, 날짜가 남았으니 주사도 따끔 아플 것 같고, 내일 가자, 내일 가자 하면서 자꾸 미루는 것처럼. 의사에게 내민 팔과 주사기의 거리가 1센티미터도 되지 않을 때의 순간은 늘 긴장된다. 살면서 몇 번을 겪었지만, 적응되지 않고 매번 낯선 느낌이다.
나 또한 ‘글쓰기를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가끔 직면한다.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글쓰기.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 글쓰기.
시간과 노력이 헛되이 소비되는 일을 당장 그만두고, 자격증 문제집을 사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뭔가 돈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잊을만하면 고개를 든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으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고민과 실행을 오가며 그 폭이 좁아지길 바라지만,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녀는 답을 찾았을까? 과연 문제는 해결됐을까?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 아마 그녀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지난 계절처럼 앞으로도 쭉 같은 모습으로 산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난 계절, 도시에서의 치열함과 황폐함을 잊고, 친구들과 나눈 소소한 즐거움만을 기억하며 (물론 귀농생활의 불편함도 언급되었다.) 여기가 내 세상이로다,하고 돌아왔다면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보다 강해졌다. 자연이 주는 기운에서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마음.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다시 딛고 일어날 힘.
그것이 혜원에겐 자연이고, 우리에겐 영화 자체다. 힐링을 얻고 기운을 차리는 것.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다시 봄.
계절은 끊임없이 흐르고, 삶은 계속되며, 나를 괴롭히는 문제는 늘 생긴다.
힘들면 잠시 쉬면 그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면 또 그뿐이다.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삶에 지친다면, 쉬어가자. 남들은 앞만 보며 가는데, 나 혼자 제자리에 서서 뱅뱅 도는 느낌, 혹은 뒷걸음질 친다는 불안감이 들어도. 잠깐 쉬자. 그래도 된다.
쉬고 나면, 더 큰 걸음으로 더 가볍게 더 힘차게 갈 수 있다.
멈추는 것도 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