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최건우는 종이에 뭔가를 적어 눈앞에 내밀었다. ‘500미터 앞 주유소에서 정차해. 경찰이 올 거야.’ 경찰이란 단어에 고개를 돌려 최건우를 바라봤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도 아니고, 내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답이 적힌 다음 종이를 내밀었다. ‘아까 태우 형한테 상황 문자 보냈어. 형이 경찰에 신고했어.’
난 수고했다는 말이나 잘했다는 말없이,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곤 500미터 앞에 있을 주유소에 가기 위해, 우회전 깜빡이를 넣고 옆 차선으로 이동했다. 최건우는 주유소에 도착했을 때, 상대의 핸드폰에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미리 씨디를 틀었다. 침묵 속에 음악이 들어와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핸드폰에서 뭐라고 했는지, 최건우가 “음악이라도 들어야죠. 폭발물을 안고 돌아다니는데.”하고 말했다. 음악 때문인지, 갑자기 왠지 도로는 차들이 더 들어온 것 같았고,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미안해.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좋다. 그리고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
“다음에 차 한 잔 할까?”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할 말이 남아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나, 지금은 뭔가 할 말이 생길 것 같았다. 다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혼 후 회복되지 못했던 서로의 상처에 대해서.
“어.”
너무 작게 말해서 최건우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주유소에 들어서자, 이미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디서 연락을 받은 건지, 직업정신이 아주 투철한 기자들도 여럿 보였다. 최건우가 뒷자리에 있는 모자를 가지고 와서 내 머리에 푹 씌워주었다. 차가 정차하자, 경찰이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달칵 소리는 음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조용히 내렸고, 최건우는 범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핸드폰을 경찰에 넘겨주었다. 대기하고 있던 폭발물 전문가가 차 밑으로 들어갔다. 경찰이 경찰차로 우리를 안내했지만, 최건우는 미리 와있던 매니저의 차 안으로 나를 떠밀었다. 매니저가 괜찮냐며, 음료수 병의 뚜껑을 따서는 내밀었다. 내가 즐겨마시던 브랜드의 포도 주스였다. 그의 섬세함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웠지만, 난 말없이 받아서 주스를 마셨다.
선팅 된 창문 너머로 경찰의 질문에 대답하는 최건우가 보였다. 그 앞에는 내 얼굴이 비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차를 향해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들이 있었다. 사냥이 한창인 어느 초원의 하이에나들처럼. 하늘엔 카메라 플래시보다 강렬한 태양이 우리를 내리쬐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