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저기까지만,

by 허니모카

난 밝은 사람을 좋아한다. 웃음소리가 크고 유쾌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밝은 사람.

호탕한 웃음이나 깔깔거리는 웃음이 아니라, 활짝 웃는 정도의 웃음. 소리는 나도 되고, 나지 않아도 된다. 굳이 이미지화시키자면 그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좋다.

글은 글 쓴 사람을 닮는다. 아닌 척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인지, 문체조차 말투와 흡사하다.


소설가가 에세이를 써도, 영화감독이 에세이를 써도 다 그 모습 그대로다. 전혀 다른 색이 아니라 소설에서 본, 영화에서 느껴졌던 이미지가 그대로 글에 옮겨온다.




마스다 미리.

알쓸신잡 3에서 아티스트 유희열이 <밤하늘 아래>라는 만화책을 들고 나와서 알게 된 작가다.

도서관에 가보니, 작가의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 몇 권을 꺼내 아무 데나 펼치고 읽어봤다. 단순한 그림과 담백한 생각이 주된 것 같았다.


도서관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찾아봤을 때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을 보고 사실 기대를 가졌었는데, 막상 만화책을 펼치니 살짝 싱거웠다. 내 입맛엔 맞지만 간이 좀 싱거운 느낌. 물론 전체를 읽어보지않아서 섣부른 판단이다. (수짱이라는 주인공과 같은 나이대였다면 더 공감했을까? 이미 다 겪어본 일이라 좀 밋밋한 지도..)


그래서 만화책을 두고, 에세이를 하나 빌려왔다.



잠깐 저기까지만, 이라는 여행 에세이다. 작가가 혼자, 남자 친구와, 엄마와,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쓴 글이다. 처음엔 좀 밋밋한가 싶었는데, 읽을수록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참 글이 밝다. 글 쓴 사람 자체도 참 밝겠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분위기가 이렇게 밝지. 붕 뜨지도 않고, 착 가라앉지도 않고. 딱 적당할 만큼 밝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싶어 문장을 찬찬히 읽어보기도 했다. 솔직함과 단순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예를 들어 혼자 간 헬싱키 여행 마지막 날, 시간상 알토 아틀리에와 시나몬 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작가는 갓 구운 시나몬 롤을 고르면서 이렇게 썼다.


<결국 시나몬 롤을 택한 나였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알토 아틀리에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거리의 카페는 언제까지 있을지 알 수 없다. 알토 아틀리에는 또 언젠가 가자! 하는 긍정적인 포기를 한 것이다.>

솔직하고 단순하다. 가볍지만 시시할 만큼의 가벼움이 아니라, 무겁지 않을 만큼의 가벼움이다. 그래서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졌다.



소소한 이야기, 그것처럼 쉬운 게 어딨어. 일상이 다 소소하지. 특별한 거 아니면 다 소소한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지만, 막상 일상을 써보면 저런 분위기가 안 난다. 별 거 아닌데 재밌는 느낌, 그게 없다.


봄의 느낌을 원하는데, 가을이다.

이건 노력으로 되진 않을 것 같다. 글의 색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꿔야 하고, 마음을 바꿔야 하며 기분의 높낮이를 바꿔야 한다.


이 글 역시 봄은 아니다.

작가의 밝은 글은 재밌게 읽고, 맘껏 부러워하며, 내 문체가 가진 계절을 더 다듬고 다듬어야겠다, 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오늘, 지난번에 놓고 온 마스다 미리의 만화책을 몽땅 대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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