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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독전>

락은 누구인가.

by 허니모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캐릭터의 향연, 음악의 범람, 화려한 색채.

영화엔 많은 사람들의 온갖 수고스러움이 돋보인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뭔가 미적지근함이 느껴진다. 엔딩씬이 주는 누가 총을 쐈는지는 맘대로 해석해, 라는 남겨진 숙제 때문이 아니다.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깔끔하지 못한 느낌은 이선생이란 캐릭터의 불명확한 존재 때문이다. 원호(조진웅), 진하림(김주혁), 보령(진서연), 브라이언(차승원) 등의 캐릭터는 성격이 명확하다. 무엇을 중시하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곧 그들의 생각 뒤엔 그에 맞는 행동이 뒤따른다. 전혀 어색하거나 불합리하지 않게.


하지만 락(류준열)은 다르다. 악인도 아니고, 선인도 아니며, 이선생이되 이선생 같지 않다. 그의 생각과 행동은 때론 일치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그건 그가 자신을 숨기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이건 연기력과는 상관이 없다. 류준열은 훌륭히 해냈다. 이선생 캐릭터 자체가 모호할 뿐이다.



취조실에 앉은 락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유주얼 서스펙트가 떠올랐고.. 락이 이선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케빈 스페이시처럼 어눌해 보이는 연기를 하다가 사실은 나였어, 하면서 기막히게 빠져나가는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마약거래 전반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고, 마약을 제조하는 농아 남매와도 오로지 그만이 대화가 가능하다. 대놓고 내가 바로 이선생이요, 하는 격이다. 애초에 관객에게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맹목적으로 이선생을 쫓으며 락을 믿어버리는 원호가 좀 의아할 정도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내가 이선생이야, 근데 믿어 안 믿어? 하면서 혼란시키지도 않는다. 그럼 대체 락은 어떤 인물일까?


실제 인간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지을 수 없듯이 영화 속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같은 악인이어도 본성이 착하거나, 본성이 더 악하거나..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이선생은 좀처럼 어떤 캐릭터인지를 알 수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건물이 폭발했고, 그만이 운 좋게 살아남아 경찰 앞에 피해자이자 목격자로 진술하게 된다. 그리고 이선생을 잡으려는 경찰에 협조하며 자기도 이선생을 자처해 폭발사고를 낸 그를 잡으려 한다.




영화의 대립구도는 표면적으로는 원호와 이선생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하지만, 자세히 보면 원호와 이선생은 대립구도가 아니다. 이선생은 숨지도 쫓기지도 않기 때문에. 그 둘의 신경전은 보이지 않는다. 이선생, 즉 락은 자신이 이선생인지 모르는 조진웅을 비웃지도 통쾌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이 같은 인물을 쫓을 뿐이다. 때론 너무 감정을 숨긴 나머지 감정이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럼 류준열과 차승원이 대립각인가? 그것도 아니다. 차승원은 영화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락이 내가 이선생이야,라고 밝히는 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그럼 류준열은 누구와 대립구도일까.

이 영화의 장르는 범죄, 액션이다. 숨고 찾는, 쫓고 쫓기는 각이 있어야 한다. 류준열이 쫓는 건 보이지 않는 실체, 이선생이다. 이선생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모두가 실체를 알 수 없는 이름뿐인 남자. 우습게도 실체는 락,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인물과 대립하고 있다.

락은 마약으로 죽은 부모 탓에 뜻하지 않게 다른 부모의 아이, 서영락으로 자랐다. 원호에게 "그렇다면 나는 서영락입니까, 아닙니까?"라고 묻는 건,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과 같다. 나는 누구인가, 서영락인가, 이선생인가, 다른 존재인가.


마약거래를 하면서 마약은 하지 않고, 남의 팔을 무참히 자르면서 죄의식은 없고, 그러면서도 노을 진 풍경을 보며 쓸쓸함을 느끼는 남자.


캐릭터가 이렇게 어려워진 건, 영화 속에서 캐릭터가 주체가 되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 스토리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성향의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그 움직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짜고 나서 그것에 맞춰 캐릭터가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저런 혼합된 성향을 갖게 됐다.




엔딩신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았을까.

인적 드문 곳, 듣지 못하는 농아 남매, 온통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들리는 총성.

총을 쏜 건 누구였을까.


묘하게도 락은 총을 쏘아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총을 맞았다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호의 눈빛이 흔들릴 때, 락은 망설임 없이 먼저 총을 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락이 총을 맞았다면, 그는 노을을 보고 있을 때처럼 쓸쓸한 표정, 혹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락, 과연 그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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