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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녀와 야수>

잠시 동화에 빠지는 129분.

by 허니모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운동을 하고 와서 씻은 후 냉장고 문을 열었다. 혼자 점심을 챙겨 먹기는 귀찮아서 할인받아 산 리코타 치즈를 양상추, 어린잎에 툭툭 넣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대충 만들어도 맛은 좋은 샐러드를 들고, 소파에 앉아 ‘미녀와 야수’를 봤다.


비는 오지 않지만, 옅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군데군데 가린 흐린 날. 혼자 앉아 영화를 보기엔 모든 게 완벽했다.



줄곧, 감정을 몰입하기에 장소가 얼마나 중요할까를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 속 공간이 현실과 너무 다르기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과 호화로운 옷장, 찻잔, 촛대 등의 장식품들. 보기만 해도 무게가 느껴지는 드레스와 헤어 스타일.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졌다. 그곳에 있다면, 배우들은 현실을 잊고, 동화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 보는 나조차 잠시 그 세계에 있었으니.


모두가 아는 이야기라 별다른 결말을 기대하지 않고 봤다. 오히려 반전이란 게 있다면 이상할 것 같았다. 마법에 풀린 왕자(댄 스티븐스)가 벨(엠마 왓슨)을 거부한다든지, 벨이 사실 마녀였다든지, 개스톤(루크 에반스)이 끝까지 살아남아 그들의 행복을 방해한다든지... 이러면 영화는 산으로 가게 된다. 처음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결말을 가지고 시작하는데, 그 기대를 무너뜨리니 말이다.


깔끔한 기승전결, 완벽한 공간의 재현, 잔잔한 음악(음악은 좀 더 신났으면 어땠을까? 분위기는 좀 달라졌겠지만, 나름 신났을 것 같은데) 모든 게 완벽했다.

여기서 말하는 완벽이란 기대에 무난하게 부응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이렇겠지, 하는 기대. 영화가 듣도 보도 못한 영상과 캐릭터로 혼을 빼놓거나 눈 깜빡이는 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너무 좋았다기보다, 기대에 별로 흠집이 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영화는 510만이라는 꽤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았다. 새롭지 않아도 익숙한 감동이어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으면 괜찮다, 좋다, 라는 평을 불러온다. 영화에서도 조화가 중요하다.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각각의 조합은 조화로움과 평온함을 가져온다. 캐릭터의 성격을 변화시키거나, 결말을 좀 바꾸거나, 뭔가 다양한 시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관객 수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와,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동화 속에 있었냐는 듯, 빠져나온 현실은 구름이 싹 걷히고 환한 하늘을 보여주었다. 구름이 유유히 파란 하늘을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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