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인생에 강렬한 햇빛 하나

by 허니모카

가을 길을 산책했다. 원래 의도는 산에 오르는 것이었으나 내내 좋던 날이 어제 하루 유독 흐렸다. 아침에 잠깐 비도 내려 계획된 산행을 포기했다. 사실 등산이라 이름붙이기도 좀 민망할 수 있는 낮은 곳이었지만.


그래서 산행을 포기하고, 가려던 사람들과 간단히 차와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다시 흐렸던 하늘이 맑아지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아, 이런. 그 뒤론 언제 그랬냐는 듯 ‘쾌청’을 보여주었다. 잠시 바람이 세게 부는 듯도 했지만, 햇빛이 저리 반짝이는데 그쯤이야.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들 헤어졌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워 혼자 잠시 산책을 했다. 가을이 물들어가는 걸 해마다 보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무더위 다음이요, 초록 다음에 오기 때문일 것이다. 1년 전의 색감은 그저 추억이요, 아련한 기억이니. 낙엽이 흩뿌린 물감마냥 놓여진 길을 걸으며 예쁘다, 색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저런 조합은 참 예술이다, 혼자 속으로 감탄을 하며 걸었다.


그런데도 뭔가 마음은 좀 허전했다. 허전이라기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헛헛함, 공허함. 아니다. 그 말로도 부족하다. 공모전에 떨어지고, 글이란 건 접고 그냥 남는 시간에 더 재밌고 편하게(사실 그냥 가만히 있겠다는 말) 보내는 건 어떨까, 그것도 아니면 돈이 되는 일을 본격적으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다소 무기력했다. 심란했다기보다는 무기력이 맞다. 그럼에도 이불 뒤집어쓰고 내리 그 생각만 하거나, 밥도 굶고 커피도 끊고 명상을 한 것도 아니다. 겉으론 아무 일도 없는 척 밥 먹고 커피마시고 (굳이 표 내자면, 아주 단 게 필요해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신 정도?) 웃고 떠들었다. 그러고도 마음의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산길 아래 나마 잠시 걸었다.


너의 드넓은 가슴으로 나를 안아주어라, 내 근심을 좀 덜어가라, 확 날려버려라... 라는 작은 소망을 안고.

따사로운 햇빛과 하늘색 물감에 물을 잔뜩 섞어 투명해진 하늘과 적당한 바람과 색색이 변해가는 단풍. 기분전환을 하기엔 딱이었다. 그럼에도 문제의 해결은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분은 좀 나아졌어도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쳤다. 한 줄기 빛이 반짝.

아! 그걸 본 순간, 알았다. 나에겐 저 햇빛 같은 것이 필요했음을. 이 완벽해 보이는 풍경에 아주 강렬한 빛 한 줄기 말이다.


심장이 두근대서 잠을 못 이루고, 열정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이 아닌 몸소 겪어 알게 되는 것, 그것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참으로 무료해서, 삶이 아주 평온해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할지 모른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화장실도 편히 못갈 정도로 아이에게 두 손 두 발이 다 묶여 살고 있거나, 온종일 일하고 돌아와 또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저 쉬는 시간이나 좀 달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 또한 그런 육아의 시간을 지내왔고, 이제 조금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덜 빌리게 되어서인지, 나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내가 나로 서있어야 할 필요성.


누군가의 엄마도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그저 내 이름 석자로 불리고,

아이를 돌보고 밥하고 청소하는 일 말고도 내가 할 일이 따로 있어야 할 필요성.


그리고 내 삶에 강한 성취감이 있어야 할 필요성 말이다.


그래서 한참을 눈이 부시도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이름에 빛이 나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