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논리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차 바닥에 붙어있던 물건의 깜빡이는 빨간 불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렇게 목적지도 없이 출발한 차는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빨간 불이 켜있는 최소한의 몇 분. 그 시간을 넘기면 주차로 간주하고 폭발물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에 멈추지 않고 달렸다. 처음엔 속도위반 혹은 불법유턴으로 경찰이 쫓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날 따라 경찰은 근처에 없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다시 얌전히 안전운전을 했다.
출발하고 좀 지나, 최건우는 비교적 여유를 찾았다. 처음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생방송과 앨범 걱정을 하다가, 상대가 보고 있을 카메라에 안 잡히고 경찰에 신고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더니만, 얼마 지나 곧 손을 놓았다. 그 사이 득도를 한 것인지.
“재희랑은 안 사귀는 거니까 해결됐고, 생방만 안 하면 죽진 않겠네. 생방 시간까지만 차에 있으면 조용히 풀어주겠지. 안 그래?”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만 번갈아 밟을 뿐. 차선 변경 따위 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초보 운전 김여사처럼.
“미안해. 너까지 괜히. 약속 시간 안 지났어? 연락 안 해도 돼? 내가 해줘?”
“됐어.”
아직 약속시간은 5분이 남아있었다. 5분 안에 되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전화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전 남편이 최건우인데, 왜 오늘 아침에 아이돌이랑 열애설 난 그 가수요. 최건우에게 앙심을 품은 아이돌의 팬이 최건우의 차에 폭발물을 설치했는데, 하필 그 차에 타는 바람에... 회의에 못 가겠어요.라고 어떻게 말해. 전화는 최건우를 찾는 매니저에게서 먼저 왔다.
“어디야? 너 차타고 나갔다던데, 맞아?”
“어! 어떻게 알았어?”
“뭐! 미쳤어? 너 웬 여자랑 같이 탔다던데. 누구야?”
“아.. 그게..”
최건우는 사실대로 말하려다, 범인이 보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생방 못할 것 같아. 수습 좀 해줘.”하고는 황급히 끊어버렸다. 방송국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을 매니저의 모습이 선했다. 매니저에게 다시 전화가 왔지만, 최건우는 받지 않았다.
몇 년 전, 우리가 처음 연애를 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차 안에 둘이 있었고, 생방송이 있던 몇 시간 전이었다. 최건우는 매니저에게 방송 안 한다고 전화했다가 듣도 보도 못한 욕을 엄청 들었고, 난 어린애 사탕 주듯 잘 달래어 방송국에 들여보냈다. 같이 있어도 더 달라붙지 못해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달달하다 못해 마약 같은 설탕의 단맛에 그만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