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요즘 어떻게 지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지냈다 한들 어쩔 것이며, 못 지냈다 한들 어쩔 것인가. 한 시간 전에야 어찌 됐든, 지금은 1분 앞을 모르는데, 지금 상황을 더 신경 써야 하지 않나.
“난 앨범 작업도 하고, 방황도 하고. 그게 좀 길었지, 방황.”
그간의 역사를 구구절절 읊어대려 하고 있었다.
“똑같아.”
“어?”
“상황 파악 못하는 거. 같다고 예전이랑.”
“아...”
이 한마디가 우리 둘을 3년 전으로 돌아가게 했다. 지독히도 외로웠던 3년 전. 지독히 싸우기라도 했으면 아쉬움이 없었을까? 오히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추스르기가 더 힘들지 않았을까.
결혼 후, 잠깐은 신혼다운 신혼을 보낼 수 있었지만, 곧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가 최건우는 바빠졌다. 늦게 들어오거나 밤새 연습하느라 들어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가수가 직업인지라 앨범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투정보다 응원을 해주었다. 팬들은 품절남임에도 배신하지 않았고, 앨범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팔렸다. 흥행에 힘입어 곧 최건우의 전국투어 콘서트가 있었다.
그때도 난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때라 짬짬이 연차를 써서 지방까지 쫓아다녔다. 눈치가 보여 연차를 쓰지 못한 날엔 지방에서 콘서트를 보고, 혼자서 밤 11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래도 오는 내내 기차에서 문자를 보내고, 사진을 주고받으며 좋아라 했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고, 최건우는 해외공연 투어를 시작했다. 외로움과 허전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이었지만, 해외공연을 하지 말라고 말릴 수도 없었다. 그저 잘 다녀와,라고 말할 수밖에.
외로움에 비례해 회사의 업무량도 점점 커져갔다. 일에 치여 피곤은 누적되고, 위로와 격려를 나눌 사람은 없었다. 최건우와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잘 참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한 번이 문제가 아니다. 앨범은 계속 낼 테고, 방송도 할 테고, 공연도 계속 있을 거고. 이 외로움과 허전함, 공허함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테고, 그 깊이는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힘이 빠졌다.
그리고 결국 다시 힘을 내지 못하고, 최건우가 넉 달의 해외 공연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난 이혼서류를 내밀었다. 몇 번의 대화, 그마저도 내 마음을 되돌리고자 하는 최건우의 일방적인 말과 행동들이 오간 후, 우리는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