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마주한 나 _ 12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쉽게 와닿지 않았다. 살아내는 삶보다 상상 속의 삶이 진짜 인생이라니. 하지만 곱씹을수록 마음 한편이 뜨끔했다. 나는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늘 어딘가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언젠가 떠날 여행, 언젠가 하고 싶은 일, 언젠가 되고 싶은 모습. 그 언젠가를 그리며 살아왔고, 그 그림은 내 현실보다 훨씬 선명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바로 그 간극을 비추는 책이었다. 단순한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에고의 껍질을 벗고 진짜 셀프를 향해 나아가는 철학적 여정이었다. 주인공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어를 가르치는 57세 교수였다. 평생 규칙적이고 조용한 삶을 살아왔던 그는 어느 날,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포르투갈 여인을 만나고, 그녀의 언어와 우연히 손에 넣은 책 한 권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책의 저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의사, 아마데우 드 프라두. 그는 글과 편지, 목소리 속에 깊은 사유를 남겼다.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 도착해 프라두를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내면과 삶을 복원한다. 그 과정은 결국 자신을 복원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낯선 언어를 새롭게 배우며 느끼는 해방감,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비로소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완벽한 교수라는 사회적 역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에고를 내려놓고 그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탐구한다.
프라두는 끊임없이 정체성과 윤리, 언어와 존재의 본질을 묻던 인물이었다. 부모의 기대와 억압에 짓눌려 살면서도, “이 말이 정말 내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기 내면에 솔직했고, 또 다른 영혼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 정관수술을 선택하기까지 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에고를 해체하고 셀프를 찾아간 사람이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누구나 직장인, 부모, 자식, 친구라는 역할 속에 살아가지만,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도 보이지 않는 야간열차가 있을지 모른다. 현실에서 상상으로, 익숙한 자리에서 낯선 여정으로 건너가고 싶지만, 용기가 필요해 망설이는 순간.
나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 삶은 내가 상상하던 인생에 가까운가? 아니면 여전히 머릿속에만 머무르고 있는가? 살아내는 삶과 살아가고 싶은 삶 사이에서 나의 진짜 인생은 어디쯤 있을까? 이 소설은 내게 그 질문을 던졌고, 조용히 속삭였다. 망설이지 말고, 당신만의 야간열차에 오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