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마주한 나 _ 10화
여행길에 들고 가기 좋은 소설이 있다.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구르브는 연락 없다』는 200쪽도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읽는 내내 경쾌한 리듬과 웃음을 선물한다. 지구 탐사를 위해 바르셀로나에 파견된 두 외계인. 그중 구르브라는 동료가 인기 여가수로 변신해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화자는 몸무게 3.2kg, 울면 몸이 녹아버릴까 두려워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존재다. 지구인의 귀, 팔, 다리, 자전거 타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고, 전자기기에만 닿으면 고장이 나 버린다. 동전을 삼키고, 꽃을 먹고, 팁으로 억 단위 돈을 내는 엉뚱한 행보는 허술한 듯 따뜻하다. 매일의 좌충우돌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는데, 그 끝에는 언제나 “구르브는 연락 없다”라는 문장이 반복되어 독자의 마음을 묘하게 흔든다.
바르셀로나의 일상은 화자의 눈을 통해 새롭게 펼쳐진다. 이웃집 부부의 술집을 대신 운영하기도 하고, 미망인에게 연정을 품기도 하며, 아파트 수위의 사정을 헤아려 집을 내주기도 한다. 지구에 적응하지 못해 허둥대면서도, 그는 어쩐지 지구인을 사랑하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따뜻한 존재다. 사고뭉치 같지만 결국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오지랖 넓은 이방인인 셈이다.
결국 구르브를 찾아 나선 화자는 수상한 초대장을 따라간 자리에서 그를 마주한다. 그러나 구르브는 더 이상 상부의 지시나 임무에 뜻을 두지 않는다. 지구에서의 삶에 이미 매혹된 채,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도 화자의 일기는 다시 “구르브는 연락 없다”로 끝난다.
이 소설은 단순한 SF라기보다, 이방인의 시선을 빌려 바르셀로나의 풍경과 삶을 풍자적으로 비춘다. 인종 차별이나 빈부 격차 같은 문제를 가볍게 건드리면서도, 정작 중요한 건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웃고 공감해 주는 태도임을 보여준다.
『구르브는 연락 없다』는 진지한 철학서도, 무거운 사회비판서도 아니다. 하지만 소설의 유머와 따뜻한 시선은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오래 남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행을 떠나듯, 술술 읽히는 문체 속에서 문득 “외계인의 눈으로 바라본 나의 일상은 어떨까”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