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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Dec 09. 2023

아버지의 선물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기억 속에 남은  이야기들은  아주 소중한 보물들이다.


어린 시절을 시골 동네에서 보냈다. 우리 가족은 초가지붕 아래 작은방에서 여섯 남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아침저녁으로 군불을 때서 지내 던 그때, 따뜻한 아랫목은 언제나 어머니와 어린 동생의 차지였다. 겨울이 되면 방안에서도 호호 손을 불며 지내야 될 만큼 외풍이 센 그런 방이었다. 초저녁부터 이불을 깔고 누울라 치면 이불은 왜 그렇게 차고 추웠었는지, 한참 동안은 몸을 웅크리고 바르르 떨고 나서야 이불속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이불속에서 아버지의 팔을 베고 누워서 옛날이야 기를 듣곤 했었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말이다….” 가끔은 호랑이가 어떻게 담배를 피우느냐고 따지고 드는 날도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담배 피우는 호랑이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아버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제는 가물가물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이야기들이지만 아버지는 매일매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들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내가 어저께 그 집에 (옛날이야기 속의 집) 갔다 왔는데, 너 주라고 과자를 한 보 따리 주더라.” 과자가 없어도 아버지의 그 말이 듣기 좋은 나는, 냠냠 과자 먹는 흉내를 내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했다.


60년대 말 시골에서는 안데르센 동화집, 이솝 우화집, 영국 동화 이야기, 미국 동 화 이야기 같은 단행본들은 아주 귀한 동화책이었다. 아버지는 쉽게 구 할 수 없는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는 호사스러움도 내게 선물로 주셨다. 초등학교 5,6 학년 무렵에는 학교 도서관을 데리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책 속에 묻혀 있는 시간들이 참으로 행복했다. 그 시절의 시골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생활 속에 묻혀 사느라 책과 멀어졌다. 아버지가 들려주던 많은 옛날이야기들도 멀어져 갔고, 틈틈이 사 주셨던 동화책들도 어디쯤에 있는지 잊고 살았다. 그렇게 몇십 년이 지나갔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평범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내게 말했다.


“난, 저 산 꼭대기에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고 조용히 살고 싶다.”

 “피, 심심해서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나이는 들었어도 아버지의 말에 빈정대던 철없는 딸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일 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동화책을 사주던 아버지를 나는 잊고 살았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


지금은 먼 산에 홀로 누워있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책을 좋아하던 아버지에게 책 한 권 선물해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버지에게는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 주셨던 동화책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아버지의 팔베개는 내 마음 깊이 남아있다. 가끔씩 일기를 쓰면서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렇게 일기를 쓰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건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와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사 주셨던 동화책 덕분이 아닐까?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일들이 지나가버린 사소한 일상인줄 알 았는데, 그것이 내 마음에 깊이 남아 글을 쓰는 재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하면서.


지난  시간을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남겨주고 간 옛날이야기를 떠 올린다. 어린 시절 팔베개를 하고 들려주시던 그 마음의 선물이 생각나는 오늘,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다.


*****

육 남매가 모두 모였다.

모두  함께 가지고 있는 추억이야기로, 각자의 세상살이 이야기로 밤이 깊어가는 시간.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의 하루를 만들어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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