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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r 25. 2024

동강할미꽃

-햇살과  할미꽃

날씨가 맑고 기온이 높은 따듯한 봄날이다. 봄이 오면서 꽃 소식이 들려오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싱숭생숭한다. 강원도라 남쪽지방보다 늦은 꽃소식은, 경기도 이천까지 올라왔다. 이천의 산수유꽃 축제는 아마도 부근에서 제일 빠른 꽃소식일 거다. 이천 백사면에 가면 만 그루가 넘는 오래된 산수유군락지가 있다. 마을이 온통 노란빛으로 변하는 산수유마을에 몇 년 사이 주택이 많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풍경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봄이 오면 가고 싶어지는 마을이다. 경기도 이천은 서울과 멀지 않은 곳이고, 꽃소식의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져나가 최근 몇 년은 꽃이 필 때면 차량과 관광객이 몰려들어 복잡해지니 피곤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몇 해를 계속 다녔던 산수유마을의 풍경이 눈에 선 하지만 많은 사람을 피하려 올해는 마음을 접기로 했다. 대신, 강원도 정선을 가 보기로 했다. 정선에서 동강 할미꽃 축제를 한다고 하니 아마도 꽃이 핀 모양이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동강할미꽃을 직접 보기로 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강원도 정선이 첩첩산골이었지만 잘 뚫린 도로 덕분에 지금은 마음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다.  옆집 부부가 준비한 커피를 들고 함께 출발했다. 횡성 안흥에서 유명한 안흥찐빵을 사서 준비한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를 대신하며 평창을 지나 정선 귤암리 부근의 동강 할미꽃 축제장인 동강생태체험학습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미 주차장이 만원이다. 안내에 따라 부근에 주차를 했다.  


정선은 산이 많은 지방이다. 앞에 보이는 산이 완전 뼝창이다. 뼝창은 '낭떠러지나 기암절벽'의 이 지방 방언이다. 마주한 뼝창 옆으로는 동강이 흐르고 그 옆의 바윗돌과 돌이 흩어져 있는 강가로 내려갔다. 이미 고개를 숙이고 바윗돌 사이를 걷는 관광객이 여러 분 있다.

"여기 있다."

"어, 여기도.... 많으네."

이런 말들이 오가며 커다란 사진기를 얼굴에 대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진사들도 여럿 있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을 걸 보면 동강할미꽃을 찍기 위해 찾아온 전문가들이나 사진 동호회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동강할미꽃이 처음 발견된 건, 1998년 식물 사진가인 김정명 님이 동강유역의 생태사진을 찍어 이듬해 꽃달력에 게재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한국식물 연구원 이영노 박사에 의해 동강유역에 자생하는 꽃이라는 게 밝혀졌다. 동강 할미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석회암 지대인 동강 유역의 영월과 정선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지역주민들은 동강할미꽃이 자생하는 지역을 보호하려는 노력 중에 하나로 강변에서 동강할미꽃을 키운다고 한다. 덕분이 위험지역으로 산을 오르지 않아도 할미꽃을 볼 수 있다.

  

보통의 할미꽃은 마치 할머니처럼 고개를 숙이고 꽃이 핀다. 그러니  '젊어서도 할머니'이고, 꽃이 진 뒤에는 열매 부분 위로 희고 긴 털이 소복이 덮여 마치 흰머리카락처럼 보이니 '늙어서도 할미꽃'이란 노래가사에 딱 맞는 꽃이다. 그러나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보고 꽃이 핀다. 자주와 분홍이나 보라색이지만 꽃마다 그 색이 조금씩 다르다. 햇살이 따뜻한 봄날, 강변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며 바위틈에 핀 동강할미꽃을 보니 참 곱고 예쁘다.  소박한 꽃을 두 손으로 감싸 보호해주고 싶다.


순하디 순해 보이는 꽃이지만 꽃에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뒷동산에 진달래를 꺾으러 가기도 하고 산나물을 캐러 다니기도 했다. 그때는 할미꽃을 많이 보았다. 양지바란 언덕에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피어있다가 꽃이 지면 소복하게 하얀 긴 털을 달고 있던 할미꽃. 예전에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할미꽃을 케다가 화장실에 넣었다. 그러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건 할머니들이 전해주신 이야기였다. 자생하는 많은 풀들이 민간요법으로 쓰이던 시절이지만 독성이 있는 할미꽃이 민간요법에도 쓰였는지는 모르겠다. 독성이 있었다하니 먹지 못하는 풀로 알고 있다.  흔하던 그 할미꽃을 이제는 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잘 다듬어진 정원에서 흰 머릿카락을 곱게 빗은 도심의 할머니같은 할미꽃을 가끔 만난다.   


할미꽃이 야생에서는 사라져 가는 식물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동강할미꽃은 동강유역에서만 자라는 귀한 식물이다. 동강할미꽃은 우리나라에만 자생한다고 하니 더 귀한 식물이다. 보존해야 할,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식물인데 욕심 많은 사람이 있어 그들은 할미꽃을 독점하고 싶은 모양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두지 않고 옆의 잎을 자르거나 뿌리를 뽑는 사람까지 있다고 한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닐 테지만 그렇게 망가진 모습을 봐야하는 사람은 마음이 아프다. 단 한 뿌리라도 그 모습 그대로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가파른 뼝창과 동강의 강물이 흐르는 옆의 바위 사이에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사진을 찍었다. 행여 실수로 꽃 한 송이라도 망가트리면 안 된다. 사진을 찍고 있는 스마트 폰에 벨이 울린다. 일요일의 오후, 집에서 쉬고 있는 어린 손녀의 전화다.

"할머니 뭐 하세요?"

"응, 할머니는 할머니꽃 만나러 왔지?"

"할머니꽃? 어떻게 생겼는데? 보여 줘."


세상이 좋아졌다. 정선 산골짜기에서 서울에 있는 손녀와 전화하면서 내 얼굴 옆으로 할미꽃을 보여준다. 그 꽃이 할머니꽃이냐며 웃는다. 이름이 재미있나보다. 재미있다고  재잘거리는 명랑한 소리가 봄햇살 같다. 아직 붉은보랏빛 꽃송이라 하얀 머리카락이 생기지 않는 꽃을 할미꽃으로 설명하려니 말이 길어진다. 이야기를 들으며 까르르 웃음이 넘치는 손녀에게 이 할미가 소중한 존재이듯, 야생에서 자라는 할미꽃도 모두가 잘 지켜주는 소중한 우리의 야생화로 오랜 기간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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