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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May 28. 2024

말이 많아졌다

인생총량의 법칙

어린 시절 "벙어리"라는 말을 들었을 만큼 말이 없던 아이. 숫기가 없어 사람들과의 만남이 어려웠고 익숙하거나 친한 사람이 아니면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잘 못하던 아이였다. 나는.  


60세 이상의 수강생들이 모이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실버청춘학교에 다녀왔다. 수업은 교사의 진행에 따라 주제가 정해지고,  주제를 가지고 지금의 생활이나  지나온 생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돌아오며 생각하니 수업 중에  다른 이들의 이야길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든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을 다 들어주어야 함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는 말을 잘하지 않으며, 외출이 별로 없어  바깥에 나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드물다 보니 아마도 말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만나면 말이 마구 쏟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동대학교  김두식교수의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에 보면 '지랄총양의 법칙'이란 말이 나온다.  우리 인생에는 누구나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하는, 욕망을 억누르지 말고 풀어내야 하는 총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 총량을 어느 정도는 밖으로 표출하며 살아가야 한다. 즐거움이나 어려움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어내야 하는 욕망을  참지 말고 풀어내며 살아야 하는  총량이 있다는 말이다. 작가는 사춘기 자녀의 속썪임을 보면서, 부모들에게 지랄총량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동안 어느 정도는 지랄스러운 짓을 하고 사는데,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으며 부모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겪어야 할 지랄스런 욕망을 억제하지 않고 사춘기에 다 풀어내며  성장하고, 그 시기가 지나가면 억눌림 없는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니 유난스러운 사춘기를 잘 다독이자는 말을 한다. 


어려서 벙어리란 말을 들을 만큼 말이 없었는데 나이 들어 수다가 많아진 나도 "말의 총량법칙"에 갇혀 어려서 하지 못한 말을 나이 들어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말이 많아지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또 드는 생각은 유전의 법칙이다. 나는 아버지의 반쪽과 어머니의 반쪽으로, 또는 두 분의 유전자가 적당한 비율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말이 적던 아버지를 닮아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을 말이 없이 지냈다. 말 없던 시기가 지나 나이 들어서는 말을 많이 하셨던 어머니의 삶을 살아가고 있나 보다. 사람에게는 평생동안 해야 할 말의 총량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이론을 만들면서 긍정의 나를 만들어 합리화시켜 보는 시간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을 생각해 본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퇴근해 오면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다 이야기한다. 종알종알, 하하 호호 웃으며 시시콜콜 이야기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말을 많이 해?"
"하루종일 아무 말도 못 해서 심심해서 그런다."

까르르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시골 마을은 낮시간을 혼자 지내지 않았다. 시집와서 몇십 년 살아가고 있는 시골 마을은 토박이들이 많아 모두가 한 가족같이 지내니 낮 시간 동안에도 마을 아낙들이 만나 쉼 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지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이 들어 노인이 되었다. 결혼한 우리들이 가끔 집에 가면 어머니는 계속 이야길 한다. 

" 엄마, 책 읽어요?"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쉬임 없이 이야길 즐기셨다.  나이 들어가면서 그 증상이 심해지는 건, 아마도 곁에 있던 자식들 각자의 집으로 떠나보낸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어찌 그리 할 말이 많으신지.  


나이 들어서 내가 말이 많아졌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면 줄줄이 나온다. 예전에는 내 약점이나 실수는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게 더 재미나서 혼자 까르르 웃으면서 마구 떠들어 댄다. 속 없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잘 포장해서 이야길 한다. 아마도 무의식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조금은 더 좋은 이미지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 또는 의식적으로 잘 보이게 포장지를 싸거나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내 이야길 마구 지껄인다. 진심을 담은 진실이라는 보자기를 쓰고. 인생은 아름다움의 연속은 아니다. 그저 그런 사소하거나 때로는 큰 실수도 하는 누추함이 시시때때로 나타는게 인생이다. 그러니 실수나 누추함도 사는 일 중에 하나일 뿐이란 생각으로 부끄럽 없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말을 하다 생각한다. 이건 어머니에게서 받은 유전자의 역할일지도 모른다고. 말이 없던 아버지의 유전자로 젊은 날을 말없이 보내고 나이 들어가면서는 어머니의 유전자로 말이 많아진 여자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거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사랑하는 딸이니까.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진심을 담은 진실의 나를 이야기하는 건 좋은데.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듯이, 그도 말하고 싶을  테니까. 좋은 친구는, 말을 해서 그를 다독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하는 말을 잘 들어주는 일이다. 말을 하므로 인해 속에 담긴 화가 풀릴 수도 있고,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줌으로  상대의 마음을 다독일 수도 있다.  


청춘실버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수업시간을 생각한다.  수업은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지만 오늘의 나를 이야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말이 많아진 나를 돌아보며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평생동안 할 말이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는  "언어의 총량법칙"있다면 그 때문에 말이 많아졌을 것이고, "유전의 법칙"이 있다면 어머니에게서 받은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두 개를 법칙을 인정하면서 내가 노력할 일은 말을 하되,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잘 들어주는 일이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 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살아가는 일에는 노력해야 하는 일이 참 많다. 노력해야 하는 일이 긍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내 삶이 더 아름다워지길 바란다. 



**********



어느사이 5월이 훅~! 지나갑니다. 

세상은 꽃더미지만, 생각해보면 해마다 5월은 병원행이 많은 달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힘든 한 달이 지나 갑니다. 

이석증과 감기와 비염, 위염으로 조금 지쳐 지낸 시간 입니다 

브런치도 쉬었고요.

청춘실버학교도 결석하다보니 벌써 수강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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