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아이들이 다녀갔다. 카네이션 화분과 금일봉이든 봉투를 놓고 예약해 놓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오면 마음은 좋은데 몸은 피곤하다. 왁자지껄한 이박 삼일이 지나가고, 이제 너른 방에 둘이 앉은 조용한 하루를 맞는다. 오전에 남편과 차를 타고 가며, 라디오에서 가수 양희은이 진행하는 '여성시대'를 들었다. 노래 <어머님의 은혜>가 가곡으로 나오고 있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란다. 어버이 날인줄도 몰랐다.
내가 어른을 모실 때를 생각하면 어버이날에 대한 추억이 많다. 어버이날 아침이면 만든 카네이션을 부모님의 가슴에 달아 드렸다. 아주 오래전 직장에 다닐 때는 여직원들이 직장 상상의 가슴에 꽃을 달아 드리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의 어느 해에는, 출근길에 혼자 사시는 친구의 어머님 집에 꽃을 들고 찾아갔더니 서울서 내려온 친구가 있었다. 내 마음에 감동을 받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직장에 지각했던 날도 생각난다. 아래층에 시어머님이랑 동갑의 할머니가 혼자 사셔서 꽃을 달아 드리던 추억도 있다. 하지만 이제 어버이날에 가슴에 꽃을 달고 다니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 많은 거리에 가면 가슴에 꽃을 단 부모님이 계시겠지만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들으며 부모님을 생각했다. 어느 해 어버이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 삼아 조금 멀리 나갔다. 댐(횡성)이 있고 주변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오리고기를 먹으러 갔다. 친정부모님은 오리고기가 건강에 최고라고 생각하셨다. 양가 부모님이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건강이 안 좋으시던 두 아버님. 식사를 하시면서 기운이 없으신지 두 분이 번갈아 쓰러지곤 했다. 친정엄머니는 두 분을 시중드느라 바쁜 나를 안쓰러워하시며 식사를 못 하시던 날의 아픈 추억도 떠오르는 날이다.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12시에 우리 부부가 다시 만났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어버이날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우리 부부는 변두리로 나갔는데, 가는 곳마다 식당 앞에 차들이 가득하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손님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가 바삐 살면서도 가족 모임을 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남편이 좋아하는 게장을 먹으러 갔다. 나이 든 어른들끼리 식사를 하시는 테이블도 있고, 세대가 다른 가족들이 모여 식사 중인 모습도 보인다. 옆 테이블에는 젊은 딸과 나이 많으신 아빠가 식사 중인데, 그 옆 자리에 다른 식구가 더 있으면 더 좋아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남의 가정 모습을 내 잣대로 생각하면 안 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조금 외로워 보였다.
오후에 아들의 전화를 받으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아도 멀리 있는 자식들이 한 번 더 부모를 생각하게 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