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5박 6일 동안 도쿄를 여행했다.
우리 세대는 패키지여행에 익숙하다. 일반인이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건 1989년이다. 그러나 그때도 여전히 지방에 사는 서민인 나는 해외여행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건 그저 일부 부유층이나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일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지방의 일부 사람들이 패키지 여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외국으로 여행가 보는 일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행프로그램이나 책에서 읽을 수 있는 해외의 이야기에 조금은 호기심을 가진채 말이다.
1977년.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남편에게 주어진 20일간의 특별 휴가. 그 시간을 무언가 남기는 일을 하자는 남편의 야무진 계획으로 미국여행을 갔다. 가기 전, 가정 경제를 생각해서 서서히 불고 있던 동남아 여행을 가고자 나는 말했었지만, 남편은 기왕에 가는 거 선진국을 가야 한다고 거창하게 미국을 선택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해외여행은 그로부처 다시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가까운 중국을 가게 되었다. 남들보다 자주 간 여행은 아니지만 몇 해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는 일이 이어졌다. 물론 패키지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감싸줄 여행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 타는 일마저도 두려움이 있으니 동행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출발해서,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 안내로 여행을 하며 다녔다.
세월이 흐르니 아이들이 가이드 없는 자유여행을 떠난다. 그 용감함이 몹시 부럽다기보다는 신기했다. 어떻게 가이드 없이 여행을 떠나지?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자유여행. 해외여행은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가 당연하지.
어느 날, 남편이 홍콩으로 여행을 가잖다. 우리의 자유여행지로 홍콩이 당첨된 이유는, 딸이 혼자 다녀온 여행지가 홍콩이며 딸이 머물던 호텔이 교통이 편한 도심 한가운데 있는 안전한 장소라는 이유었다. 두 번째 이유는 치안이 안전한 대도시이니 서울 여행하듯이 돌아다녀 보자는 의견이었다. 당연한 듯하면서도 뭔가 불안정한 생각이 드는 여행지였지만, 떠났다. 그게 10년 전이다. 2014년.
처음 타보는 저가비행기에서는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 오후 1시가 넘어서 떠나는 비행기지만 기내식을 먹을 생각으로 점심까지 굶었는데 비행기에서는 밥을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배가 고파져가는 시간, 라면 냄새가 난다. 저 앞에 어떤 승객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기내식 언제 줘요?"
기다리다 못해 승무원에게 말을 거니, 기내식이 없단다. 세상에 비행기에서 밥을 안 주다니. 비행기 서비스가 왜 이래? 이게 무슨 일인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게 가이드 없이 떠나는 해외여행인데 시작점인 비행기에서부터 뭔가 삐걱 거린다. 배고픔을 참으며 뭔가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으로 홍콩공항에 내렸을 때의 그 불안함. 아는 글자가 어떻게 단 한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똘똘한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다. 휴대전화 사용법에도 어설퍼서 그저 문자나 주고받을 수 있는 휴대폰이 내 통신수단의 전부였다. 말 한마디 할 수 없지만 굳게 믿으며 들고 간 여행안내 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궁금함을 쉽게 풀어주지 않았다. 아니 내가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게 맞다. 공항의 식당을 기웃거려 보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라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느 식당을 들어가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었다. 어찌어찌 햄버거 비숫한 걸 먹었다. 맛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에서 읽었던 카드. 공항에서 구입하라던 교통카드. 그 카드를 구입해야 하는데 어디로 가나? 제복 입은 어떤 사람을 붙잡고 다국적 단어를 들먹이다 보니 손가락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 보란다. 카드를 구입하고 건물밖으로 나오니 젊은 남녀가 한국 여행안내서를 들고 서 있었다.
"한국 분이세요?"
얼마나 반가운지. 젊은 부부인 그들도 홍콩여행을 왔단다. 우리 네 사람은 모처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버스를 타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들이 주는 안정감.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그 공통점이 여행의 시작을 도와준다. 중간에서 먼저 내린 그들을 보내고 다시 버스로 이동하다가 지하철로 바꿔 타고 내려서 호텔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계 있어요."
용케도 한국인임을 알아보며 우리를 보며 말을 한다.
"한국말 잘하네요, "
"헌국에서 살다 왔어요."
"시계는 나중에 보고 여기 호텔을 가려면 어디로 가요?"
가짜시계를 파는 사람임에도 다행히 호텔 위치를 잘 알려준 덕분에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의 그 안정감. 이제 어디를 가서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이 호텔만 기억하고 있으며 만사 다 해결될 것이라는 안도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게 집이 주는 편안함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공간, 나를 쉴 수 있게 하는 집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곳임에 틀림이 없다. 그때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이번에 5박 6일의 일본 여행을 했다. 이제 60대의 나이. 몸도 마음도 해외자유여행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 몸이다. 지방에 사는 내 친구들이 해외여행은 패키지여행이다. 나도 그들과 함께 패키지여행에 익숙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자유여행으로 떠났다. 10년 전 홍콩여행 때보다는 조건은 좋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언제 어디서건 통역서비스가 되고 손안에 세밀하고 정확한 지도가 외국에서도 우리말로 안내를 해준다. 스마트폰으로 여행지 예약도 자유롭지 않은가. 그러나 그건 젊은이들의 몫일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은 나이 들어 기성세대로 사는 사람이라 새로운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세상이 젊은이들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세상물정은 어두운 어르신이 되었다. 외부 조건은 10년 전보다 좋아졌지만 개인적인 조건은 그때보다 더 후퇴해 있다고 봐야 한다. 마음이 현대의 신문물에 뒤처져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떠났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니 일단 가보는 거다.
5박 6일 동안 도쿄라는 대도시에서의 방랑 같은 여행. 가기 전 여행에 대해 단 한 가지도 미리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떠났던, 거기에 더해 까막눈으로 떠난 일본 여행. 우리나라 수도 서울 조차도 잘 알지 못하면서 이웃나라 수도에서의 여행. 그건 방랑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방랑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긴 했다. 내 손안에 든 컴퓨터. 스마트 한 삶을 만들어주는 휴대전화가 열일한다. 통역을 하고, 지도를 건네주고,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주고, 각종 서비스를 예약해주고, 거기에 가면 어디가 좋다는 안내를 한다. 물론 좋다는 안내가 사람마다 가치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방랑자에게는 엄청한 도움이 된다는 게 정답이다.
나름대로 목적지를 잡아 하루를 사람 많은 도시를 떠돌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옆 정거장에 내린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면 마치, 우리 동네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록 내 집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대도시 한복판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아늑한 침대가 있다는 사실과, 어제와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 주는 익숙함이 참 좋다. 아는 이 없는 대도시에서 내 방향을 정해주는 기준점이 호텔이기도 하고, 만약 길을 잃어버리면 갈 곳의 중심이 되는 기둥과도 같은 존재가 호텔이다. 아침이면 호텔을 떠나고, 저녁이면 돌아오는 호텔로 가는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10 년 전, 처음으로 떠났던 홍콩의 자유여행에서 호텔을 찾았을 때의 그 안도감을 생각했다. 이번 도쿄여행에서도 대도시의 많은 사람 속에서 헤매다 호텔 부근에 도착하면 느끼는 내 동네에 온 것 같이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이 참 좋다.
여행은 호텔에서 시작하고 호텔에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