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왕산 관광케이블카
올해 구정 연휴는 길었다. 명절 행사는 갈수록 간소해지고 시집 식구들이 오지 않지만 명절은 여전히 피곤하고 해야할 일이 있다. 가족들이 모여 웃으며 담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즐거운 시간이 가지지만 숙제하는 기분을 느끼는 건, 오래전부터 있어온 주부의 역할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엔 가족들을 보고 싶고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마음 한가운데 있다.
딸과 사위, 손녀와 평창 발왕산을 갔다. 용평스키장이 있는 곳인데 스키를 타러 간 건 아니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스키 같은 건 생각지도 않는다. 젊은 아이들이야 마음 한구석에 스키를 타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군소리 없이 우리를 따라나선다.
용평스키장에 가면 관광용 케이블카가 있다. 이 케이블카는 이미 오래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40대와 50대는 등산을 많이 다녔다. 발왕산은 1458m로 국내에서 12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산의 정상을 등산했었다.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에도 아름다운 산 경치를 바라보면서 등산을 했다. 어느 해 1월 초에는 등산회 사람들과 함께 막걸리를 배낭에 넣고 올라가 1년 동안 무사 등산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기도 했다. 온몸을 꽁꽁 싸맨,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얼굴을 모두 가리고 눈만 빼꼼히 내밀고 패딩으로 둘둘 말은 사진을 언니에게 보여주니" 무장공비 같다고." 깜짝 놀란다. 추워서 어떻게 올라갔냐고. 어느 해 가을에는 산 정상에 있는데 자신들의 업체를 홍보 하시는 분들이 등산객들에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라며 티켓을 주셔서, 이렇게 편하게 정상에 오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편하게 케이블카에 앉아 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여기는, 돌아가신 시어머님도 왔다가신 곳이다. 연로하신 분을 모시고 여행을 하는데 80 이 넘도록 평생 산행 한번 해보지 못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케이블카를 탔다. 산 위에서 굽이굽이 능선이 이어지는 높은 산을 바라보며 신천지를 경험하는 것처럼 신기해하시던 어머님은 그다음 해 먼 길을 떠나셨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렸던 어느 해. 계절이 바뀌면서 몸이 회복되어 갈 즈음, 등산은 할 수 없으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던 발왕산. 굽이 굽이 하얀 능선이 보이고 정상의 산길에는 하얀 사슴풀처럼 나무들이 상고대를 입고 겨울바람을 견디고 있었다. 잎이 없어도 아름다운 나무, 찬 겨울의 시련을 견디는 나무가 약을 한 줌씩 먹으며 민머리로 견디는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 겨울이 지나면 새싹이 돋고 무성한 초록의 숲을 만들어 줄 나무들이 강추위를 견디며 피워내는 얼음꽃. 하얀 상고대를 보며 겨울나무가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봄이 올 거라는 생각에 힘을 얻었던 날도 있다. 그 여행 이후, 찬 바람을 견딘 겨울나무처럼 몸을 회복하면서 여행하는 즐거움에 빠져 한동안 꽤 돌아다녔다.
20분 이상을 가는 케이블카에 앉으니 아이가 어린 시절에 스키 타던 날을 추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빠랑 오빠랑 스키 타던 날들. 그때 리프트 타는 게 너무 무서워서 많이 즐기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 옆에 앉은 남편은, 아들이 초급자 코스를 벗어나 중급자 코스로 가버려서 아이 따라다니느라 아주 고생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웃음을 만들어 준다. 어린 손녀는 높은 하늘을 둥둥 매달려 다니는 케이블카와, 저 아래 아주 까마득히 보이는 산자락과 작아 보이는 사람들이 스키를 타며 달리는 모습을 신기하고 재미있는 듯, 말소리가 동동 거리며 떠 다닌다.
정상에는 관광객이 많다. 스키 손님이 아니라 눈 덮인 산 위의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이 많다. 정상에는 발왕산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가 있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안개가 낀 흐린 날이라 바람 부는 추위는 없는데 시야가 흐리다. 스카이 워크에 올라가도 주변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와 데크길을 걸어보고 산책길로 나왔지만 굽이굽이 산등이성이는 보이지 않고 하얀 허공만 보인다. 다만 주변 풍경은 잘 보인다.
흐린날씨에 눈이 내리니 조심스러워 멀리 나가지 않고 카페에 앉았다. 손님이 많으니 자리가 없어 눈치 보면서 서성이다 겨우 한 자리 차지 했다. 따뜻한 음료와 케이크를 놓고 않았는데 잠시 나갔던 딸과 사위가 나를 부른다. 밖으로 나가니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여기저기 둘러보잖다. 생각보다 좋다. 상고대는 적지만 눈이 내리고 있어서 온통 하얀 세상이다. 눈길을 밟으며 산책길을 걷는데 눈이 덮여 하얀 나무가 가득한 풍경이 아주 멋지다. 바람도 없다. 까르르 숨 넘어 가듯 웃음이 가득한 여섯 살 손녀도 이 눈길이 아무 부담이 없는 듯하다. 나뭇가지에 고드름을 따면서 신기해하고, 눈을 뭉쳐 눈싸움하자고 덤비기도 한다. 딸과 사위도 눈길을 걷는 얼굴이 웃음이 가득하다.
"이런 설산은 처음이야. 정말 너무 예뻐. 멋있어."
딸의 말에 흐뭇하다. 처음 보는 아름다움을 만들어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는 엄마니까, 자식이 좋으면 다 좋다. 자식의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
이렇게 눈꽃세상의 추억 하나를 또 내 기억 속에 남겼다. 아름다운 설경과 즐거운 마음이 하나 된 예쁜 추억. 긴 연휴가 오히려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내 자식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 자식이 즐거워하는 휴일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