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밑반찬 준비를 위하여
친구들과 모이면 자기 아이들 이야길 많이 한다. 아이들이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신혼 이거나 또는 조금 일찍 결혼했으면 학부형인 아이도 있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고 아이들이 이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우리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딸들은 직장을 다닌다. 직장을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음식 솜씨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닌 아이들이 많다. 친구의 딸이 가끔 반찬이 뭐가 있느냐고 물어 온다고 한다. 새로 만들어 놓은 반찬 이야길 하면 "엄마는 범위가 좁다"는 말을 한단다. 그건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반찬의 범위도 좁은 편이니까.
40대의 어느 날, 요리강습을 받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지방에 사는 내 또래들은 대부분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키우면서 살림하며 살았다. 처녀 시절에도 결혼하기 전 살림을 배우라는 봉건적인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있어서 우리 또래는 신혼 무렵에도 그럭저럭 반찬 흉내는 내면서 살림을 시작했다. 음식의 모든 건 엄마에게 배웠으니 친정에서 먹던 음식이나 시집살이하면서 시어머니에게 배웠던 음식이 대부분이다. 재료도 집에서 기른 채소나 동네슈퍼마켓이나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비슷한 식재료로 각기 조금씩 다른 집안 어르신들의 손맛이 따라갔다. 아주 가끔은 중국집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가족 외식이 전부였던 젊은 날이었다. 중년의 어느 날 생각하니 늘 해 먹는 음식만 먹는 것 같아 요리강습을 받고 싶었으나, 긴 시간 살림을 했던 전업주부가 요리를 배우러 다니는 일이 괜스레 창피함이 느껴졌고, 학원에 갈 용기가 없어서 그런 마음을 접었더랬다.
사회가 변하면서 가족 외식이나 이런저런 모임이 많아지거나 사회 참여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식이나 배달 음식이 점점 많아졌다. 아이들이 자라 저마다의 사회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 살다가 집에 오면 엄마밥상에서 밥을 잘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가 밥을 잘 먹으니 기분이 좋지만, 결국은 늘 먹던 음식일 뿐이다. 엄마의 특식이란 게 없었던 것 같다. 내 아이는 엄마의 음식 중에 어떤 음식을 추억할까? 그냥 시골밥상일 것 같다. 내가 잘하는 대표음식이 없으니까.
직장생활은 하지 않더라도 사회참여가 많아지면서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동아리 모임을 갖기도 한다. 동아리 모임의 동생이 요리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그녀도 이미 중년인데 요리학원을 다니고 있다면서, 대학에 다니는 딸의 친구가 놀러 오면 떡하니 요즘애들이 좋아하는 요리상을 차려주면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 그거 참 좋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한 상 차려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새로운 음식점에 가면 음식 이름도 생소하고 음식을 주문할 줄도 몰라 어리둥절하는 사람이라 그녀의 요리학원 수강이 참 부러웠다. 부러우면 나도 학원 등록을 하면 될 텐데, 그게 아직 잘 안 된다. 며느리와 딸에게 주는 반찬통에는 늘 김치가 담겨있다. 나는 그냥 김치만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하는 반찬은 늘 거기서 거기인, 오래전부터 늘 해 오던 평범한 음식이 전부이기에 새로운 반찬이 필요하면 반찬가게에서 사 먹어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딸의 집에 갔다. 딸과 사위가 아빠가 좋아하는 국수를 삶아 준다.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양념을 넣고 면을 삶아서 만든 잔치국수가 참 맛있다. 멸치국수만 만들어 내던 나와는 또 다른 맛이다. 나는 생전 만들어보지 않은 스파게티도 만들어내는 걸 보면 나 보다 나은 음식솜씨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시부모님이랑 살면서 내 남편은 부엌 언저리를 오지 않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남녀가 구분 없이 도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평등을 실천하는 것 같아서.
아이들이 자기들이 먹고 싶은 걸 잘 만들어 먹는다 하더라도, 한 세대의 차이가 있는 나로서는 기본으로 밑반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김치와 깍뚜기를 담아 가져간다. 그러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밑반찬은 늘 먹는 것만 가져가는 것 같다. 결국은 같은 반찬을 몇 번 가져다주다가 그것마저 또 가져갈까 그만둘까 망설이게 된다. 새로움이 없으니까 내 밑천이 다 드러나는 것 같다. 내 아이들에게 들은 말은 아니지만, 친구의 딸내미가 "엄마는 범위가 적다"는 말은 결국 내 아이의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래전, 연로하신 시부모님의 빕상을 보면서 두 분이 드시는 반찬이 참 허술하다고 생각했다. 늘 먹던 반찬이 상 위에 올려졌다가 냉장고를 들어가고 다시 다음 식사에 그 반찬통이 그대로 상에 올려졌다. 맛있는 걸 해 드시지 왜 매일 김치만 드시나 생각했다. 어쩌다 없는 솜씨를 내서 반찬이라도 만들어 드리면, 김치면 되지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던 시부모님이다. 이제는 그분들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우리는 가끔 외식도 하니 시부모님의 밥상보다는 나은 생활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먹는 음식이 다양해진 아이들의 세대가 볼 때 내 밥상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늘 변함없는 상차림 같을 테니까.
친구와 헤어져 오면서 , 40대의 어느 날 중년의 주부가 요리학원에 다닐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날을 후회했다. 음식에도 세대교체가 있을 테니 더 다양하고 새로운 요리 만들기에 도전했으면 내 아이들이 집을 방문했을 때 그럴듯하게 한 상 차려줄 수도 있을 텐데 늘 예전에 먹던 엄마밥상으로 머물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위가 적은 엄마 밥상에 앉아 잘 먹어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고마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요리학원에 갈 용기는 없다. 유튜브 속에는 수많은 음식전문가가 있다. 몇 분의 솜씨를 보다가 멸치를 볶아보기로 헸다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고추를 쫑쫑 썰어 넣고 견과류 몇 알 넣고 설탕과 물엿을 넣고 나중에 통깨와 참기름을 솔솔 뿌려주는 내 멸치볶음은 식으면 딱딱해진다. 유튜브에서 양파를 잘게 썰어 함께 볶는 걸 보고 따라 했더니 딱딱하게 굳지 않고 부드러워 맛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그 맛있는 멸치볶음을 하면서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던 대로 하는데 왜 허전한 느낌이지? 멸치볶음이 딱딱하다. 밥을 먹으며 생각하니 새로운 방법이었던 양파를 넣지 않았다. 그 때문에 뭔가 허전한 느낌이 있었던 모양이다. 익숙함이 먼저 행동을 하니 새로 배운 것보다는 예전에 하던 대로 부지런을 떨었던 거다.
범위가 좁을 걸 알면서도 도전 앞에서 다시 익숙한 예전으로 돌아가고 만다. 내 좁은 범위를 언제쯤이면 넓힐 수 있으려나?
이미지: 한식 식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