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중에 안동역 앞에서 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오랜 시간 무명가수로 활동하던 가수가 직접 가사를 써서 부른 노래인데 긴 시간 꾸준히 인기를 끄는 노래인 모양이다. 한 10여 년 전, 아는 언니가 "안동역 앞에서"라는 노래를 들어 보았냐며, 노래가 너무나 좋다는 거다. 평소에 음악 프로그램이나 라디오방송과 텔레비전을 듣거나 보지 않던 나로서는, 그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 더군다나 그 시절엔 트로트에 관심도 없던 시간이다. 언니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 보아도 아무런 김흥도 없지만, 언니가 좋아하는 노래이니까 그런 노래가 있나 보다 생각하며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사이 나도 나이가 들었고 코로나라는 병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지구를 들었다 놓는 시간이 있었다. 건강에 자신이 없는 나는 외출을 즐이고 동네 마트 정도나 다니면서 집안에서 생활했다. 그 무렵, 방송에서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방송을 보지 않았었지만 케이블 방송을 통해 재방송이 계속 나오다 보니 오다가다 다른 사람이 보는 방송을 조금씩 접하게 되었고, 작은 재미를 느끼다 보니 어느 사이 재방송을 찾아보게 되었다. 재방송을 보다가 본방송 애청자가 되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무명가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랐다. 익숙한 가수가 아닌 새 얼굴의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그걸 또 점수를 매기면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경연에 참석한 출연자에게는 무척 잔인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가슴이 쫄깃거리는 긴장감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무슨 심술심보인가. 공개된 대결의 그 숨 막히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재미를 느끼다니. 제작진이 노리는 꼼수에 출연자도 시청자도 포박에 묶여서 그 시간을 긴장하며 시청하고 또 재미를 느끼는 거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어느 사이 트로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주 듣다 보니 좋아하는 노래도 생기고 잘 부르는 목소리에 매료되어 응원하는 가수도 생겼다. 이미 지나간 시대의 노래인데도, 내 젊은 날이 생각나거나, 인간의 삶 속에 녹아있는 희노애락을 함께 느끼면서 노래에 빠져들었다. 누구에게나 행복과 고통과 갈등이 연이어 일어나고, 그걸 헤쳐 나가고, 그러므로 거기서 즐거움을 얻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게 삶이다. 하루 동안의 갈등이 깊은 날, 어둠 속 자리에 누워 그들이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사이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그 가수를 노래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시름이 덜어지는 그런 느낌을 가져본 사람이 나만일까? 오죽하면 집안을, 장사하는 사업장을 가수의 사진과 굿즈상품으로 도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방의 축제 현장에 가면 단체복인 양 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관광버스를 동원해서 가수의 공연을 보러 오는 팬들도 많다. 아직 그 정도로 가수에게 빠져들지 않아 팬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지방 행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역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한 시대 대중가요사를 이끌었던 작사가 고 박건호 선생이 원주 출신이다. 젊어서 들었던 수많은 노래 중에 그분이 쓴 가사가 참 많다. 꿈을 먹던 젊은 시절에 들었던 사랑과 이별 이야기나 서정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들을 들으면서 참 좋아했던 노래를 다시 들으러 갔다. 그러나 음악회의 모든 노래가 그분의 노래는 아니고, 출연 가수들이 자기의 노래와 박건호 작사가의 노래를 부르는데 그렇지 않은 가수도 있었다.
가수 진성이 나왔다. 이미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이름도 많이 알려진 가수다. 무대에서 그가 말했다. 오랜 기간 무명가수 시절을 보내면서 젊은 시절에는 박건호의 노랫말을 받고 싶었지만, 가난한 무명가수라 당대 최고 작사가인 박건호선생의 노래는 받지 못했고 대신 자신의 노래 대부분의 가사를 직접 썼다고 한다. 그가 부른 노래가 오랜 기간의 무명시절을 벗어나 그를 인기가수로 만든 노래 <안동역 앞에서>였다.
안동역 앞에서. 전국에 많고 많은 역 중에서 왜 안동역이었을까, 가 궁금하다.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역 이름을 쓰거나, 유명한 역 이름을 써야 금방 사람들 기억에 남는 거 아닌가? 왜 안동역이었을까? 안동역 앞에서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은 얼마나 쓸쓸할까?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도 알지 못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망막함.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찼는데, 기적소리 끊어진 늦은 밤까지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안타까움 이라니. 너무 감상적인 마음인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던 노래가 새삼스럽게 가슴을 적신다.
여고 시절에 우리는 그런 약속을 많이 했다. '1999년 9월 9일 아홉 시에 우리 만나자' 그런 약속이다. 뭔가 특별할 것 같이 숫자가 겹치는 날에 만나자는 그런 약속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후의 일이지만 철석같이 지켜질 것처럼 미래의 어느 날 만나자는 약속이거나, 20 이 두 번 겹치는 2020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이런 약속을 하곤 했다. 미래의 어느 날, 친구와 내가 있는 장소는 다를 것이고 그 장소에 따라 첫눈이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데 그런 고차원적인(?)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냥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소녀시절의 내 친구들은 어딘가에서 "안동역 앞에서"라는 노래를 듣는다면 옛 생각을 할까? 아니지 모두 잊고 있을 거다 아마. 나 역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던 그 약속을 하던 에피소드는 어렴풋이 기억하되, 옛 친구중에 누구와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으니 말이다.
젊은 날 좋아하던 박건호 선생님은 참 좋은 노랫말을 많이 만들었다. 그 노래를 듣던. <단발머리> 소녀가 자라서 <꿈을 먹던 젊은이> 시절을 보내며 <그대는 나의 인생>이니 <새끼손가락> 걸며 <내 곁이 있어주> 라며 외치던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젊은 날 많이 들었던 노래 들이다. <잊혀진 계절>의 이야기로 <잃어버린 삼십 년> 이 되어버린 사라진 이야기도 많겠지만 아름다운 우리나라 <아,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며 지금 여기까지 온 지난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다. 날자도 정하지 않고 그저 첫눈 오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는 미련하고 어설픈 약속을 떠 올리며 안타까움으로 마음 헤매는 일들이 많은 것이 삶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꿈꾸며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절망에 빠지는 일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나. 가슴 아프지만 참아내고 극복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던 지난날이기도 하다. 오지 않는 사람을 안동역 앞에서 기다리는 것은, 목표를 잡고 어떤 일을 꿈 꾸며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기다림의 끝을 잡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비유한 노래이기도 하다. 대중가요는 이렇게 우리 마음을 대변해 주는 노래 들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10여 년 전, 아는 언니가 감동했던 안동역 앞에서 라는 노래는 10 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비로소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내일은 눈이 많이 내릴 거란 예보가 있다. 이미 첫눈은 아니지만 세상 어딘가에서는 눈 내리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부디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라고, 누군가가 꿈을 꾸며 세운 자신의 목표와 바람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보는 밤이다. 감상에 젖어서.
사진
2023. 12. 태백 만항재 (차 타고 올라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