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검진을 받았다. 1년에 한 번 오라던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이번 예악은 6개월로 잡아 주었다. 검사를 받으라면 받아야지, 어쩌겠나. 의사가 내 몸을 보고 싶다는데. 지난번 대학병원 정기검진에서 새로운 모양이 보인다고 했다, 그게 뭔데요? 지켜봐야지요. 지켜볼 수밖에. 중간에 동네 영상의학과 의원에 가서 검사를 해 봤다. 나빠 보이지는 않아도 자주 검사를 해 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지난주, 예정된 검진 날자가 되어서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를 찍고 방사성의약품 주사를 맞고 서너 시간 지난 후에 검사를 진행했다. 주의사항은 6~12시간 임산부나 어린아이 옆에 가지 말고, 물을 충분히 섭취하라고 한다. 검사 자체는 힘들지 않으나 거의 하루를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으면서 혼자 지냈다. 좋은 결과만을 기다린다. 물 많이 마시고 밥 잘 먹고 충분히 자면서 안정을 취하지만, 마음은 흔들림이 많다. 집안 청소를 좀 해야 하나? 미련이 많아 옷장이 안 입고 넣어둔 옷을들 다 버려야 하고, 주방 정리를 좀 해야겠다. 읽지도 않고 쌓아둔 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책장의 저 책들을 포장해서 고물상에 넘겨야 하나? 주방 정리는 언제 하나. 쓸모없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많다. 채움보다는 비움의 생활을 해야겠구나. 집안 정리와 주변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어수선하다.
다음날 아침.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3살 손자가 밤사이 고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했단다. 6개월 아기가 있는데 봐줘야 될 것 같다. 어쩌나? 전날 검사를 받았으니 내 몸에 방사선물질이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아기를 봐줘야 한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행히 내 일은 안 도와줘도 아기랑은 잘 노는 남편이 있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나는 보조자 역활을 하기로 하고 함께 아들 집으로 갔다. 병원에 있는 손자는 장염이라고 하는데 열이 계속 높고 먹지 못하고 설사를 반복하고 있다. 아이들이야 아프면서 크지만, 막상 아이가 아프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이 걱정과 아들 며느리 걱정하느라, 잡념이 많던 내 걱정은 쑥 들어갔다. 더불어서 집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도 달아났다. 며칠이 지나니 손자는 퇴원해서 다시 개구쟁이가 되었다.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웃음꽃을 피운다. 며칠간의 작은 시련이 지나갔다. 이제는 불볕더위를 어떻게 피해 갈까, 가 이야기의 소재다.
덥지 않은 병원에 갔다. 며칠간 잊었던 불안감이 차오른다. 그해. 그때는 건강검진을 받고 아무 걱정 없었는데 "악성이에요"라는 의사를 단 한 마디로 나와 가족의 일상이 몽땅 흔들렸었다. 그날의 기억이 남아있어 의사를 만나러 가는 마음이 불편하다. 혈압이 오른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음에도 병원 앞에만 가면 가슴이 뛰고 혈압이 오르는 이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걸 의식하면 더 불안하다. 대기실에 앉아서 생각한다. "나는 깡이 없어." 좀 더 강한 마음으로 흔들림을 잡아야 하는데 늘 이렇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성격이다. 나이가 들었으면 세상 풍파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마음에 깡도 생겼을 만 한데 여전히 여린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게 불만이다. 병원 나들이 경력이 얼마인가? 경력이 쌓이면서 강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약해지는 마음이다.
생긴 거야 어쩌겠나. 내 몸에서 살고 싶어서 왔는데. 없는 게 정상이지만 새로 생긴 녀석의 성격이 나쁘지 않은 양성종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다행이지만, 의사의 그 말이 또 덤덤하게 느껴진다. 다시 항암치료를 하면 어쩌나?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변한 만큼 나는 나이 들었으니 어려운 투병생활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마음이었는데, 다른 치료는 필요 없고 있을 수 있는 양성 종양 하나 더 가지게 된 마음이 그저 덤덤하다. 혹이 잘 생기는 건 내 체질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나쁜 소식을 전하지 않은 의사에게 "감사" 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덥고 습한 날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치악산 아래 맨 끝에 있는 카페에 갔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초록만 보이는 산 아래 작은 계곡 옆 카페. 손님이 두 팀 있다. 조용한 실내와 너른 창으로 보이는 초록 숲아래 뜰이 잘 가꾸어진 카페다.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를 앞에 놓고 앉아 오후 시간을 보냈다. 스마트 폰을 들고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손 안의 컴퓨터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읽는다. 글 잘 쓰는 일반인들이 많은 세상. 얼굴 모르는 그들의 글을 읽으며 친근함을 느끼고 마음을 달랜다. 소중한 글이 주는 위안이 참 좋다.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친구 같은 그들이다. 글을 읽으며 공감하기도 하고 슬며시 웃어 보기도 한다. 그들이 있어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은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화단에서 기른 풋고추와 상추와 깻잎을 따고, 방울토마토 한 움큼 따서 배부른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걱정이 많았는지 가족 카톡방에 병원에서의 사진과 소식을 전했다. 가족들의 걱정과 안심을 담은 안부가 따뜻하다. 그 사이로 농담이 오가고 농담은 웃음을 부른다.
이렇게 병원 검진 시간이 지나갔다. 마음은 많이 안정되어 간다. 다만 더운 날씨가 조심스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