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채팅방에 11개월 손자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사진이 올라왔다. 보통의 의자가 아닌 자동차 모형 의자에 앉아 있다. 옆에는 3살 형이 앉아 있고 그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의젓하다. 한창 움직임이 많은 시기라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대견하고 신기하다. 미용사가 가위를 들고 앞에 서 있는 사진에는 아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있다. 동영상이 아니라 어떤 말들이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으니 사진 속 풍경으로 보면 눈을 감고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어쩜 그리 말을 잘 듣고 앉아 있는지 대견하다. 다른 사진에는 한 꼬집 정도의 짧은 머리카락이 있다. 아마도 아이가 자른 머리카락인 모양이다. 화장지에 쌓여 첫 이발을 기념하는 모양이다. 세상이 변해 이렇게 아기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데도 전문가의 손을 이용한다.
오래전 내 여고시절에는 귀밑 1cm의 단발머리였다. 한쪽 옆으로 가르마를 타서 머리핀을 꼽고 단정하게 빗은 머리카락이 귓 밑을 겨우 1cm 이상을 내려오면 안 되었다. 얼굴이 긴 사람은 그 모습이 참 예쁘지 않은 이상한 모습이었다. 갸름하고 긴 얼굴형인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머리형이지만 그런 걸 생각할 시절이 아니었다. 학교 규칙을 잘 지켜야 했다. 머리카락은 금방 자랐고 학교에서는 용의 검사를 자주 했지만, 어린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더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었다.
엄마가 우리 자매의 머리를 자주 잘라 주었다. 삼 년 터울의 언니와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다. 커다란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마루의 의자에 앉으면 엄마는 가위를 들고 우리 앞에 섰다. 미용 기술이 없던 엄마가 집에서 바느질 할 때 외에도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르는 일은 힘들지 않을 것 같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엉성했다. 귀보다 조금 아래를 그냥 똑바로 자르면 되는 일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미용 기술이 없던 엄마였으니 당연히 어려웠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머리카락 자르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용의 검사는 매정하게 이어졌고 냉담했다. 전날 머리카락을 잘랐음에도 언제나 지적을 당하고 불량하다고 이름이 적혔다. 왜? 어제 머리를 잘랐는데? 차별하는 거야? 여학생의 새침한 반발심이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다시 재검사를 받을 때는 고개를 약간 앞으로 기웃이 해서 뒷머리카락이 조금은 짧아보이도록 요령을 피우면 재검이 통과할 때도 있고, 다시 지적을 당할 때도 있다. 어느 날은 왼쪽을 지나던 선생님에게서는 통과했지만 , 오른쪽을 지나던 선생님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왜 안 잘랐느냐고 야단을 쳤다. 이건 또 뭐야? 왜 같은 머리를 가지고 차별을 하는 거야? 심통이 안 날 수가 없다. 재검의 명령을 받고 집으로 와서 똑바로 서서 거울을 보니, 양쪽 머리카락의 길이 달랐다. 그랬다. 엄마는 신중했겠지만 미용실력이 없었던 거다. 중간이 층은 지지 않았지만 가위가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기웃이 약간의 사선을 유지하며 머리카락을 잘랐던 거다. 그러니 양쪽 머리의 길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다 잘하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아버린 거다. 엄마에게 머리를 똑바로 못 잘랐다고 짜증을 부렸다.
소설가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산문집을 읽었다.
"나는 언제부터 아버지에게 실망했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부터가 사실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힘이 들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언제나 내가 부모를 실망시킬까 두려워하며 자랐지 부모가 나를 실망시키기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p56) "
그렇다. 우리는 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야단을 들을 때 실망시켜 드리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지, 부모가 나를 실망시킨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라고 나이 들어 어른이 되어 가면서 부모님의 약함과 그분들의 실수와 어느 사이 인식하게 된다. 그분들의 작아져 가는 모습을 인식하지만 그게 나를 실망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의 크고 작은 실수와 절망을 바라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내가 얼른 성공해서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생각처럼 효도하지도 못하고 내 앞의 삶에 지쳐 부모님을 자주 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오래전 엄마는 한창 멋을 내는 여학생인 우리를 왜 미용실로 보내지 않았나? 요즈음은 11개월 꼬맹이도 전문 미용실을 가는 세상인데. 그건 세상이 달랐기 때문임을 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같은 귓 밑 1cm라 하더라도 보기 좋고 더 단정하게 보여서 친구들은 용의 검사도 상큼하게 통과했던 거다. 농촌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자연에서 먹을 걸 얻고 살면서 시장의 멋쟁이 문화를 접하지 않은 엄마로서는 어깨에 보자기를 두르고 머리를 자르는 의식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의 마음에도 딸들이 예쁘기를 바라며 다목적 가위로 정성을 들였지만, 결과는 삐뚤삐뚤 양쪽 머리가 수평을 이루지 못했다. 그게 그분의 눈높이에 맞는 엄마세상의 세상살이였던 거다. 지금이야 엄마의 그런 삶을 이해는 하지만 그 무렵의 학창 시절은 예쁜 기억으로 남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올 수 없는 지난 시절은 아름답지만 아쉬움도 많다. 그러나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는 엄연히 다르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그 시절과 지금의 시대를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기억은 옛날로 돌아가 아쉬움과 미안함과 그리움이 교차한다. 어린 아기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모습이 귀엽고 예쁘다. 미용실도 그냥 미용실이 아니고 아기전문 미용사에게 머리를 자르는 세상에 내 아이들이 부모노릇을 한다. 그런 세상에서 귀엽고 예쁜 손자 모습으로 자라는 우리 아기들이 사는 세상이 참 좋다. 부럽기도 하면서 그런 예쁜 모습을 보며 할머니로 살아가는 세상이 행복하다. 어린 아기가 까탈스럽게 울고 불고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고 이발을 하는 듬직한 모습의 아기가 내 손자여서 아이가 더 예쁘다. 지금 나는 사랑하는 내 엄마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제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지만, 내가 해보지 않은 좋은 경험을 내 아이들이 자유롭게 행하면서 사는 세상이을 바라보며 사는 것도 좋다. 물론 세상 속에서 부대끼며 경쟁하며 아이들의 부모로 살아야 하니 어려움은 내 자식들의 삶도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매일 보내주는 영상 속에서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웃고 있으니, 우리 가족의 오늘이 행복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