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파티

by 순미

생일파티

아침을 먹으며 남편이 말한다.

- 토요일 당신 생파 한 대.

- 내 생일?

잊고 있었던 내 생일이 이맘때인건 맞지만 생일이 오기도 전에 이렇게 예약이 집히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 들으니 내게도 생일을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더 생긴다. 아이들이 크면서 결혼을 하고 새롭게 생긴 가족들 덕에 대우받는 입장으로 살고 있지만, 세상이 예전과는 달리 기념일도 챙기고 사는 일이 많아짐에 따른 변화이기도 하다. 가족의 기념일,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기억되는 기념일이 있고,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 살다 보니 휴대폰에 찍힌 생일을 보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오월 스무날이 내 생일이다.

남편에게서 들은 생파 이야기를 들으며 4~50년 전의 어느 날 아침이 불쑥 더 오른다. 보릿고개 넘기가 힘들었던 시절, 먹성 좋은 육 남매를 먹이고 입히는 일에 힘들었을 부모님. 먹고사는 일이 당장 시급한 시절에 많은 가족의 생일을 챙기는 건 엄청난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어느 해 5월 20일. 아침밥을 먹고 학교로 나서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1남5녀의 귀한 남동생 생일이야 기억하겠지만 우리들 생일은 그럭저럭 지나갔었던 시절이다. 그날 아침 등굣길에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 원인은 지금 기억하지 못한다. 5월 스무날이 생일인 나는 아침에 미역국을 먹지 못했다. 눈물을 짜는 내게 누군가가 왜 그런지를 물었고, 내 생일이라며 울음보를 터트렸다. 그 이야길 전해들은 엄마가 달려왔다.


- 네 생일은 음력 오월 스무날이야. 오늘은 양력 5월20일이잖아.


음력과 양력의 애매모호함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방에 걸린 일력에 매일의 날짜가 변하면서 큰 숫자의 양력과 작은 숫자의 음력을 기억해내곤 민망해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소동이 있고 나서도 생일상을 받았었는지 받지 못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사절이야 그저 미역국 하나로 생일을 보냈지 생일 선물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만 그랬을까? 아마도 시골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자라면서 무심히 넘어가는 생일을 섭섭해하지 않으며 살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생일상을 차리는 일도 벅찬 숙제였다. 시부모님 생일상을 차려야 했다. 남편의 생일에는

- 미역국은 끓여 줬니?

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지만 며느리인 나의 생일날에는 전화 한 통 없다. 아이의 생일날에는 선물을 준비하고 미역국과 함께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또래의 친구들을 부르곤 했다.


어린 시절 내가 생일상을 받았었는지 못 받았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결혼 후에 친정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생일을 기억하고 봉투를 내밀곤 했다. 봉투에 든 건 어머니 기준으로 계산한 우리 가족 저녁 식대였다. 남편과 나, 그리고 당신 외손자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우리 집을 다녀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봉투나 받아서 가족 외식을 하는 게 아니라 나를 낳아 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해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대접해 주어야 했다.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철부지 딸이다. 나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친정어머니 그때도 우리 가족 생일이면 봉투를 전해주고 갔다. 다시 생각해도 염치없는 일이다. 봉투만 받고 말았으니. 그런 일이 반복되자 어느 해 드디어 시어머니가 한 말씀하셨다.

- 딸 생일이라고 오셨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주머니를 열어 봉투를 한 장 만들어 주셨다.

- 난, 지금까지 생일도 모르고 살았구나.

아이가 중학교를 다니던 때다. 그 무렵 남편도 기억 못 하는 생일을 어린 아들과 딸이 기억하곤 작은 화분이라던가, 학교 앞 문구점에서 울긋불긋한 팔찌나 마리핀을 사 오곤 하던 때다. 드디어 내게도 생일이 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면, 그때 스스로 미역국을 끓여서 내 생일이라고 공개를 했어야 할까? 그 시절 삶이 너무 바빠 나 스스로도 내 생일을 잊고 살았는데 가족이 기억하지 않아도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생일도 모르고 사냐고 놀라는 친구도 있었다. 뭐 생일이 별거라고. 기념일은 특별해야 하냐고 생각했다.


이제는 어른이 된 아이들이 생일을 먼저 기억한다. 아이들이 가지고 싶은 선물을 말해달라고 하면 먼저 미안함이 앞선다. 물건이 넘쳐나는 세상이어도 여전히 가지고 싶은 건 많고 많지만 스스로 지갑을 털어 물건을 살 만큼의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할지라고 무언가를 사 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삶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데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나를 위해 선물을 해 달라고 하겠는가? 건네주는 봉투를 받는 손이 한없이 미안하고 고맙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우리는 생일파티를 연다. 지인들의 모임에서는 함께 만나 맛있는 거 먹으면서 즐겁게 시간을 갖자는 의미이고 생일축하를 서로 주고받으니 부담 없이 즐기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고맙다. 내 생일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아침상에서 남편이 불쑥 던진 생파 이야기에 먼 옛날 어린 시절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 일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의 서운한 아픔이 컸기 때문일까? 이후에 생일상에 대한 기대가 없이 살아온 건 양력과 음력을 이해하지 못했던 민망함이 미안해서였을까?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사는 요즈음, 내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파티를 하자고 날을 잡은 지인들이 있어 그나마 힘든 날들을 위로받는 것 같다.


지인들과 함께한 생파
아들, 며느리와 함께한 생일저녁








매거진의 이전글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