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by 순미

다시,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오전의 지하철은 한가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은 대부분의 승객들은 휴대폰에 눈을 주고 있다.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아니면 미처 보지 못한 세상 소식이 궁금해서일까? 표정 없는 얼굴이 시선을 휴대폰에 두고 미동도 없이 집중한다. 슬그머니 옆자리 할머니에게 눈을 주었다. 옆자리 할머니는 a4용지에 인쇄된 무언가를 읽고 있다. 함께 보고자 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큰 글씨로 적힌 그건, 고재종 시인의 <첫사랑>이라는 시였다. 미동도 하지 않고 집중해서 읽고 계셨다. 읽기를 반복하는 것인지 시를 외우고 계신지는 알 수 없다. 어디서 적어 왔을까? 시를 적은 목적은 무엇일까? 열심히 읽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쭈어보지는 못했지만 곁눈질한 나 역시 어느 사이 그 시를 읽고 또 읽고 있었다.



고재종 <첫사랑>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문득 몇 해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동아리 회원 몇 명이 요양원에 봉사를 나갔었다. 자주는 아니고 한 달에 두 번. 한 번 나가면 대략 3~40분 정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대여섯 분의 어르신이 참여했다. 어르신의 사정에 따라 한두 분씩 참여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늘 나오시는 분들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시를, 어르신들은 직원들이 준비한 비교적 짧은 시를 a4용지에 적어 가지고 나오셨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준비한 시를 낭독했고, 그분들은 시를 읽고 난 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을 들어주는 일이 봉사의 전부였다.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들 속에서 어르신들에게서 작은 변화를 느꼈다. 비록 짧은 몇 줄의 시였지만 호흡이 고르지 못하고 말소리가 고르지 못해 듣는 사람에게 단어 전달이 되지 않았었다. 그 만큼 발음이 부정확 했었다. 어린아이들의 부정확한 발음은 시간이 지나면 또렷해 진다. 어린아이는 자라는 아이들이니까. 어르신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난수록 더 노인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이 시를 읽는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조절이 되고 있었다. 발음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좋아지고 있었다.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그분들은 복지사가 준비해준 짧은 시를 열심히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는 첫사랑 주인공처럼 어르신들은 시 한편 읽어내기 위해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하면서 시를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 시간 삶의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단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선정된 몇 분이기에, 아직은 건강을 가지고 있기에 시 읽기가 삶에 새 바람이 되었나 보다. 차가운 현실에서 꽃 한 송이 피워볼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첫사랑의 설램 같이 가슴 두근거리며 시 읽는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시를 읽으며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서로에게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마주 않아 있는 시간은 그저 평온했다.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우리들은 3~40분의 짧은 시간 속에서 어르신의 이야길 그저 들어 주고 있었다. 문 열고 돌아서 나오면 잊혀질, 내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속마음을 나눌 대상이 없는 단체 생활 속이서 마음의 외로움을 우리에게 푸는 건지도 모른다. 어르신 한 분은 같은 이야기를 매번 반복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에도 "어머, 그래서요"라고 맞장구를 치며 웃어주면 아주 즐거워 하셨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사뭇 진지하게 훈계하시는 어르신 앞에서는 다소곳이 "네"를 반복하면서 이야길 들어 주었다. 과거에 한가락하며 세상을 주름 잡았을 법한 무용담을 하는 어르신은 그 시간이 최고의 자리에 앉은 느낌이었을까? 약속된 시간이 끝나서 돌아서 나오려면 두 손을 잡고 "고마워"를 연발하는 어르신들에게 어느 사이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어떠한가? 시어른과 살면서 삶에 지쳐가고 있었다. 삶이 바빠 도움 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서운함이 많아 생각은 늘 부정적이었고, 그로인해 마음은 어둡고 외로웠던 시간이다. 요양원 봉사시간이 끝내면 돌아서는 내 손을 잡고 "복 받을" 거라고, "정말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서 어둡던 내 마음이 치유되고 있었다. 나를 고마워하다니. 아무런 이해관계 없고 자식도 아닌 나를 이렇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다니. 눈물이 날만큼 내가 그분들께 고마웠다. 난 그저 이야기만 들어주었을 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는 시간을 보냈다는 마음에 우울을 다 날려 보낼 수 있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시를 선택할 때 가족 이야기가 담긴 시를 주로 이용했다. 어르신들의 지나간 시절이나 가족, 고향이야기들이 그래도 쉽게 전달되지 않을까 해서다. 시는 이야기와 달라서 은유도 있고 함축된 언어도 있으면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시도 있다. 읽어 주는 걸 한번 듣고 나름대로의 느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용의 이해가 힘들 수도 있다. 어느 날, 부모님의 부부싸움이야기가 담긴 시를 읽었다. 눈을 감고 들으시던 어르신 한분이 그 상황이 당신의 경험인 듯이 지난 시절을 이야기 하신다. 그때 사실 놀랐다. 어떻게 한 번 듣고 시를 이렇게 잘 이해하실까? 싶었다.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날을 뒤로하고 나이 들어 부자유스러운 몸을 가지고 요양원에 계시지만 직관은 젊은이 못지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철 옆 자리 어르신이 들고 있는 시를 읽으며 내 지난 시간 속의 어르신들을 생각했다. 눈꽃이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하였듯이, 시 한편 읽기 위해 고르지 못한 호흡과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 단어를 붙들고 읽고 또 읽으며 연습으로 하루의 시간을 다 보냈을 어르신들. 그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호흡이 조절되고 제대로 된 발음을 찾아가던 그분들의 아름다웠던 날을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산다. 시를 읽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옆자리 어르신의 시 사랑을 엿보며 지나간 시간을 생각 하지만 의욕은 많이 사라졌다. 다시 봄을 꿈꾸어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죄송하다. 어르신은 이렇게 열심히 정독을 하고 계신데 나는 왜 벌써 꿈을 놓아버리고 살고 있는지. 계절은 계속 바뀌고 있으니 나도 다시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봐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