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쓴 일기

by 순미

편안하다.

어둑한 느낌이면서도 고풍스런 분위기에 홀을 장식한 초록의 화분이 안정감을 준다.예스런 분위기, 나이든 우리 또래에게 그리움을 떠오르게하는 분위기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이봄직한 올드팝송이 조용히 흐른다. 저 건너편에 여사님 두분의 나직한 소리외에는 손님마져 없어 조용함이 더 느껴지는 카페다. <예스터데이>라는 팝송을 들으며 꽃무늬가 그려진 커피잔 속의 예가체프를 마신다.


지금과는 달리 집에서 커피를 타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커피잔 세트 구입이 살림살이를 장만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릇가게에 가서 커피잔 세트를 고르며 그걸 구입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던 시절이있었다. 커피잔을 보니 그때의 커피잔 세트들이 떠 오른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어서 이제는 노년으로 가는 이 나이가 되어 카페에 혼자 앉았다. 인스탄트 커피에 중독 되었던 시절이 지나 꽃무늬 커피 잔에 잔 받침이 있는 커피잔세트가 집에서 사라졌다. 커다란 머그잔이 집에서의 커피잔을 대신하고 있다. 카페에 앉아 바리스타가 내려준 맛있는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마치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이게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이 아닐까?


세상은 얼마만큼이나 변하려나.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는 흔한 말로는 그 아쉬움을 다하지 못 하겠다. 변하는 세상은 젊은 날에는 예상도 하지 못할 만큼이다. 지금 흐르는 팝송들은 기억 속에 있지만, 30년이 흘러 한 세대가 지나가고 보니 요즈음 세상은 젊은날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있다. 감히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실 일은 꿈에서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는 30년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꽃무늬 잔에 그 시절 팝송이 흐르고 흰머리카락을 숨긴 내가 에티오피아산 원두인 예가체프 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면서.


가족 카톡방에 딸의 글이 올라왔다. 이달 말에 베트남 여행을 가잖다. 이 또한 딸의 나이였던 내 나이 30대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다니. 친구 만나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 요금마져도 걱정 하던 내 30 대 아니던가. 내가 딸 또래의 나이였을 때는 일반인이 해외여행 간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라는 선언이 있었음에도 서민에게 해외 여행은 꿈의 세계 였으니까.

지나간 시간 속의 내가 있어 오늘의 내가 있다. 때로는 기억속의 그 시간들이 많이 그립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를 예상하지 못하는 멀거나 가까운 미래의 세상 속에도 오래 머물고 싶다.


카페에 오기전 두 시간 가까이 원주 길을 걸었다. 내 건강을 위해 만보걷기를 하면서 부모님을 생각했다.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의 부모님의 삶은 지금의 삶과 너무나 달랐다. 아버지는 70 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그 삶이 참 아깝다. 그 당시에는 아까운 나이라 생각도 못 했다. 나이든 어르신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그 무렵의 나이로 향해가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깊다. 지금 이렇게 변한 선진국 속 잘 사는 나라의 국민으로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의 삶이, 병실에 누워계셔서 시원한 공기 마시며 자식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는 어머니의 삶이 더 마음 아파오는 시간이다.


혼자 앉아있는 카페. 외로움은 없다. 오히려 편안하게 일기 한 페이지 쓰는,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다. 젊은 날 들었던 옛날 노래속에서. 오래전 유행하던 경양식 집의 분위기 같은 카페에서. 사장님께 분위기 좋고 커피맛도 좋다고하니, 손님들이 그러기를 원하며 카페를 하고 있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며 웃는다. 생업을 위해 카페를 하시는 분의 입장에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거나 앞서가야하는 결단도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나 15년이나 당신의 생각대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적은 단골들과의 만남만으로 카페를 운영하기에는 갈등이 많은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의 입장에서의 나는 젊은 날의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