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위로

by 순미

<작은 위로>


하루 종일 흐린 날씨 속으로 비가 오락가락한다. 오랜만에 주어진 휴가 같은 휴일이다. 그중에 비가 내리던 날이 있기는 했지만 파란빛이 가득한 맑은 날도 있었다. 그 황금 같은 휴식 시간의 마지막 날이 지나간다. 마음 같아서는 가까운 곳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편치 않은 이유도 있고, 코로나 19로 주변 상황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행도 떠나지 못하고 오전 시간은 빨래방에 가서 이불을 세탁하고, 잠시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커피를 한 잔 사서 집으로 들어왔다.


처음 커피를 마시던 날이 언제였던가? 커피 와의 시간을 생각한다.

처음 먹어본 커피는 여고시절 사촌오빠 집에서였다. 70년대. 커피는 낯선 음료였다. 설탕물도 아닌 당원 물을 먹던 시절의 이야기니까. 여름방학을 맞아 사촌오빠 집에 갔다. 매일 짙은 흑색 가루에 하얀 설탕을 넣고 끓인 물을 부어 마시는 그 음료를 오빠 부부는 맛있게 마셨다. 뭔지 모르는 그 음료가 어린 나는 무척 먹고 싶었다. 모두가 집을 비운 어느 날, 급하게 서둘러 병 속에 든 가루와 설탕을 넣고 더운물을 부어서 한 모금 마시려다가 어찌나 쓰던지 토할 뻔했다. 그게 커피였다. 훔쳐 먹는 음식이 맛있다지만 커피는 정말 맛없는 음료였다.


여고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즈음에는 여직원들이 사무실에 오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타서 대접했다. 커피가루에 프림과 설탕을 탄 커피 잔을 올린 쟁반을 조심스럽게 들고 가서 살며시 놓아주고 몇 걸음 물러선 후에 뒤돌아 나왔다. 커피와 프림과 설탕의 비율을 잘 조절해서 자주 오시는 거래처 손님들의 입맛에 맞추어 커피를 탈 줄 아는 센스 있는 여직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게 다 능력 있는 여직원의 자세였던 옛날이야기다. 커피를 탈 수 있는 특권이 있었기에 비싼 커피 가루를 아끼면서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입맛은 커피에 길들여졌다.


퇴근 후에는 다방(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저녁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결혼과 함께 그런 사치도 부릴 수 없었다. 작은 방 하나에 들어서면 혼자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부엌이 딸린 전셋집에서의 생활은 아주 팍팍했다. 슈퍼마켓에서 팔던 커피는 다른 물건에 비해 아주 비쌌다. 회사 생활 시절에야 공금으로 사던 커피라 비싼 줄 몰랐는데, 두 식구 한 달 살기에도 부족한 월급으로 커피를 사려니 그건 정말 고급 기호품이었다. 그러나 이미 길들여진 입맛에 따라, 또는 손님 접대용으로 커피는 늘 준비되어 있었고 집에서도 가끔씩 마셔주는 기호품이면서 필수품이 되어갔다.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말했다. 자기는, 설거지가 귀찮아서 커피 믹스를 사다가 일회용 종이컵에 마신다고. 이게 무슨 신대륙에서 오신 분의 말씀이란 말인가. 집에서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마시는 낭비를 하다니. 내게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때그때 설거지를 해서 사용하는 예쁜 커피 잔 세트를 사는 게 꿈이었던 내게 그 친구는 살림 못하는 엉터리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 사이 우리 집에도 커피믹스가 쌓여있었다. 세상 편리한 물건이었다. 전문가의 연구에 의해 커피와 프림과 설탕의 황금비율에 의한 믹스커피 맛에 길들여지고 나니 맛있는 커피를 타던 지난 시간 속의 여직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식사 후에는 한 잔씩 커피를 마셔야 다른 일과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믹스커피에 중독이 되어 갔다. 그 믹스커피가 요즈음은 우리 집에 없다. 믹스커피에 빠져 지내던 날, 친구는 블랙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그 쓴 커피를 설탕도 없이 마신다고? 그 입맛은 참 별나다고 했지만 내 입맛도 블랙커피에 빠졌다.


상가가 많은 동네로 이사를 왔다. 옆집에 카페가 생겼다. 오며 가며 카페를 자주 드나드는 이웃으로 살다 보니 입맛이 또 변했다. 전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원두커피가 좋아졌다. 바리스타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의, 한 이십 년 전쯤이다. 믹스커피와는 다른 원두커피가 처음에는 진해서 마실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맛에 길들여지고 나니 이제는 원두커피가 입에 잘 맞는다.


카페에서 전문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다 보니 내가 내린 커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들이 좋은 원두를 가져다주지만 내 솜씨가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이제는 다른 버릇이 생겼다. 가끔씩 카페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더라도 혼자 앉아 있는 카페에서의 시간이 편안하다. 사람들의 내게 관심도 없는데 괜스레 내가 혼자라고 마음이 위축될 필요도 없다. 나는 나니까. 그 버릇에 더해 이제는 커피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코로나 19로 인해 카페에 앉아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자투리 시간까지 아껴가며 시간에 쫓기다 보니 카페에 앉아 있을 여유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세월이 변하면서 생각이 변해 커피에 대한 나의 태도가 이렇게 변했다. 저 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시골에서 살던 그 촌뜨기가 이제는 상위권 나라의 중년이 되고 보니 기호품을 접하는 생각이 이렇게 변했다. 가정주부로서 현명한 소비습관은 아니다. 예전보다 생활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서민층에 불과하다. 예전에 비해 생활 수준이 높아진 것은 나라 전체의 변화이지 나만의 변화는 아니다. 개천에서 태어나 용이 되지 못한, 시골에서 태어나 여전히 소도시의 변두리에서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사는 서민 주부에 불과한 내가 오늘도 카페에서 사 온 커피를 마시며 지난 시간을 추억한다.


한 때 나빠졌던 건강이 이제는 커피를 마실 만큼 회복되었다. 코로나 19로 여행도 친구와의 만남도 자제하며 지내는 마음이 외로움을 커피와 나눈다. 나를 위해 큰돈은 쓰지 못하지만 가끔 커피 한잔의 호사를 누리고 싶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