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을 부른다 / 이순미
한여름이 지나가면서 아침 바람이 선선하니 좋다. 한낮은 아직 땀을 흐리는 여름 날씨지만 시원한 바람결을 따라 아침 산책을 나선다.
마당이라기에는 작은, 좁은 골목 같은 집 앞에 작은 화단이 있다. 고향 집에서 가져온 금송화의 씨앗이 여러 해가 지나도록 우리 집 화단을 가꾼다. 거기에 분꽃까지 피어나는 아침이고 보면 옛 시절의 고향 화단 같은 분위기를 조금은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 화단에 물조리개로 물을 주고 잡초 몇 가닥을 정리한다.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데 옆집의 열린 창문을 통해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침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이웃집 여자의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자니 그녀의 모습과 함께 그려지는 목소리에 행복이 가득 묻어 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면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 일상의 욕심 따위는 다 걷어버리고 온전히 가족을 위해 여는 아침의 목소리다.
문득, 나는 언제 노래를 불러 보았나? 생각해 봤다. 타고난 음치이기는 하지만 음치라 하더라도 노래도 부르면 안 된다는 이유는 없다. 잘 부르거나 못 부르거 나를 떠나 그저 흥얼거려보는 시간을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늘 우울하고 근심 걱정으로 입 다물고 사는 시어머님 앞에서 웃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던 지난날. 뭐가 좋아서 웃느냐는 시선이 의식되었다. 어쩌면 그건 나의 고정관념이 빚은 슬픔 일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시어머님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서 크게 웃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다.
어머님은 한국전쟁 당시 북에 가족을 두고 남으로 오신 분이다. 그 이전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살았다고 한다. 생활을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시간을 통해 그냥 짐작이나 해보는 시절의 가난한 나라, 시골 살림에서 즐거움이 많은 생활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쟁 후 남으로 내려와 아버님을 만나 어려운 생활로 나이 드신 분이다. 늘 먹을 것 걱정과 생활을 근심하는 소리가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치부하는 자식과 며느리 앞에서 외롭고 쓸쓸한 매일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어머님에게 우울은 나이 들어서도 고치지 못하는 생활의 일부였다. 지금 시대와 달리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눈치를 외면하지 못하는 이전 시대의 삶이 나의 삶이었으니 나 또한 덩덜아 우울한 매일이었다. 일종의 핑계일지 몰라도 시어머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이었다. 아니, 그걸 외면하고 싶어서 짜증을 부려보는 나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그 달에 중증환자가 되었다. 암의 선고와 치료가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다시 병들어 갔다. 약은 한쪽 몸을 치료하면서도 다른 쪽을 병들어가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덩달아 마음이 피로하고 우울이 찾아오면서 세상을 향한 미움도 무럭무럭 자랐다. 미움은 또 다른 미움을 불러 내가 이렇게 된 건 너희들 때문이라며 주변 사람들의 미워하기도 했다. 미움의 감정은 부정을 불러 웃음을 빼앗아간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몸은 더 힘들어지고 쉽게 지치면서 통증으로 지쳐간다. 그러니 노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찾기 힘들었다.
즐거움이 몸에 활력을 준다면 그저 흥얼거려보는 노랫소리도 분명 좋은 에너지를 가져올 거다. 하지만 아주 사소하게 흥얼거려보는 노랫소리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으니, 그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주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웃집 여자의 노랫소리와 함께 내게로 왔다.
노랫소리를 들으며 화단에 물을 주고 아침 산책길을 나선다. 동네의 작은 숲에는 매미소리가 우렁차다. 그들은 울고 있는 걸까? 노래하는 것일까? 그건 듣는 사람의 표현에 따라 울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하는 것이겠지.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오랜 시간 견디며 한 마리의 매미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다가는 것에 감사하면서 마음껏 노래 부르는 것이고, 울고 있다면 오랜 시간 견디며 성장한 시간보다 짧은 생이 슬퍼서 우는 것일 게다. 같은 시간을 사는 매미를 두고 누구는 운다고, 누구는 노래한다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듣는 사람의 표현일 뿐이다.
울면서 사는 생애와 노래하며 사는 생은 많은 차이가 있다. 짧은 생을 늘 노래 부르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는 것보다는 노래하며 사는 생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은 아주 다르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노래 부르면서 사는 생을 택해야 한다. 아침의 숲은 향기롭다. 나무에서 뿜어대는 피톤치드도 좋지만 숲의 기운이 나의 하루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매미의 합창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 화단의 보니 물 먹은 꽃들이 싱싱하게 바람을 타고 있다. 그건 아침 산책 전에 나눠준 물과 함께 이웃집 여자의 노랫소리도 함께 먹어서 일까?
사소한 흥얼거림이지만 주변에 주는 파장은 크다. 날더러 노래 부르고 살라 명령한 사람은 없지만 지금까지의 생각을 바꾸어서 좀 더 많은 웃음을 찾아야겠다. 이제는 즐거운 노래도 배워볼 시간이다. 음치라고 노래 부르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노래는 마음으로 부를 수도 있으니까. 통증 때문에 힘들다고 우울하기보다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노래 부르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는 아침이다.
화사한 아침햇살 사이로 작지만 활짝 핀 꽃들의 파티가 아름답다. 이른 봄부터 아침시간을 투자한 작은 화단. 사소하지만 작은 그녀의 흥얼거림이 생각하는 아침을 만들었듯이, 나 또한 생활 속의 버릇을 조금씩 고치면 나와 내 가족의 생활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녀처럼 노래로 시작하는 아침이 필요할 때이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