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산책길

by 순미

즐거운 산책길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서 마을의 동산으로 이어지는 얕은 산자락 길이다. 산길을 걷는데 기둥이 잘려나간 죽은 나무에 버섯이 꽃처럼 가득 피어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사진기를 들었다. 아직은, 아직 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럽지만 사진기를 자주 들고 다니면서도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지 못한다. 잘 찍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안고 버섯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 잘 찍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버섯 주변을 서성이는데 어떤 시선이 느껴진다. 산책길을 지나던 할아버지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길을 비켜서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좋은 취미 가지고 계시네요.”


사진 한 장 찍지 못해 아쉬워하는 나와는 달리 그분은 내 모습이 좋아 보였나보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좋게 보아주시니 괜스레 미안해지는 마음이 든다.


“나도 예전에 사진 많이 찍었어요. 전쟁 후였으니 벌써 오래전 얘기지.”

한국전쟁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전쟁이 지나간 후의 일이라면 아마도 6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일 듯하다. 마음속으로 그분의 연세를 가늠해보다가, 그때는 사진기가 귀하던 시절이고 사진 찍는 사람도 많지 않던 때이니 멋쟁이였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진을 찍으러 많은 곳을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하며 젊은 날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시는 것 같다. 찍어온 사진을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인화를 했다는 말씀도 하신다. 카메라가 엄청 좋은 것이었는데 그만 손자들이 가지고 가버렸다고 아쉬워하면서 사진관에 사진을 맡기느냐고 묻는다. 그렇기도 하다고 얼버무리면서 요즘은 그때와 달리 주로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잘 찍지 못한다고, 사진 찍기가 너무 어렵다는 내 말에 좋은 취미를 가졌다는 말씀을 또 하신다. 사진은 자꾸 찍다보면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테니 열심히 찍어보라고 하면서 다시 산책을 나서신다.


할아버지 가신 후에도 버섯 옆을 떠나지 못하면서 죽은 기둥에 가득한 버섯을 다시 바라보았다. 사진기를 구입할 때의 마음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마치 부러진 나무기둥처럼 메말라있는 가슴이라고 생각했다. 그 메마름을 안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구입한 사진기였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다보니 썩어가는 나뭇가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곳에서 새로 피어나는 버섯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발걸음도 멈추게 된다. 생명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무심히 지나치던 들풀의 생을 더듬어 보기도하고, 허물어져 내리는 오래된 건물의 낡은 기둥에도 마음을 주게 된다. 한 때는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다. 현재는 하잘 것 없는 초라한 모습이라 하더라도 한 때는 역사를 만드는, 의미 있는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사진을 찍으면서 배웠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까지도 소중히 바라보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기도 했다.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하물며 부서져 썩어가는 나무기둥조차도 생명을 키우는 도구가 되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스스로를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며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젊은 날의 추억을 생각하는 어르신이 계신다. 조용한 아침 길을 걸으며 무엇을 생각했을지 모르는 어르신이지만 젊은 날을 좋았던 일들을 추억하면서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 가시길 바란다.


열심히 잘 찍어 보라고, 자꾸 찍다보면 발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평범한 말씀이 진리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어르신은 명언 한 말씀을 남기신 아침이 되었다. 내게 힘이 되는 말씀이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자신감 하나 없는 시골 아낙인 나를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멋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아침이다.


활짝 핀 버섯에게 몸을 내어준 나무처럼, 지나가던 어르신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하루를 만들고 싶은 시간이다. 나무향기가 가득한 초록의 숲길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