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보낸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도착했다. 케이크 상자 속에는 간단하게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장식품들이 들어 있었다. 트리를 대신하는 나무 모양의 초록색 장식물과 성탄의 이미지와 산타의 이미지가 담긴 모양의 장식물과 작은 선물상자 모형들이었다. 코로나19로 나들이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아직은 외출이 조심스러운 어린 손녀가 있어서 집에서 간단하게 파티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생애 첫 성탄을 맞는 아기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한쪽 벽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작은 장식품들을 요기조기 붙이며 솜씨 자랑을 하는 동안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잘 꾸미려 애쓰지 않아도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분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은 성탄의 의미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도 알지 못하는 아이를 아기의자에 앉혀 놓고 딸랑이를 흔들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면 즐거운 추억이 되겠지만 사진을 찍는 시간은 웃음 속에서도 아기나 어른 모두 땀이 흐르는 시간이다.
내가 산타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건 초등학교 무렵인 듯하다. 텔레비전도 없이 라디오만 듣고 살았고 동화책도 귀했던 시절이다. 부모님들의 삶도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아이들에게 꿈을 선물로 준비할 여유는 없었을 듯하다. 라디오의 어린이 시간에 등장했던 산타클로스를 기다렸다. 빨간 모자를 쓰고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멘 긴 수염의 할아버지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 굴뚝을 통해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고 했다. 낭만이 가득한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다.
막내 동생은 나보다 열두 살이나 적다. 직장에 다니던 나도 동생의 산타가 되고 싶었다. 이미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린 동생들의 두리번거리는 눈을 피하기 위해 성탄이 되기 며칠 전에 과자 봉투를 준비해서 장롱 속에 넣고 비밀번호를 돌려 잠가 놓곤 했다. 꾀가 다 든 동생들은 그 눈치를 다 알면서 궁금증에 장롱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성탄 전날에는 양말을 문고리에 걸어두고 이불속에서 키득거리며 잠들지 못하곤 했다. 그런 귀여운 동생들을 바라보면서 나 역시 모르는 척하던 날들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의 나라에서 있었던 작지만 행복한 이야기들이다.
내 아이가 자라면서 선물은 좀 더 구체적이 되어 갔다. 한 때 유행하던 종합 선물세트의 과자보다는 원하는 장난감을 산타가 가져올 수 있도록 은근히 압력이 전해오곤 했다. 때때로 젊은 산타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원하는 선물의 종류를 묻기도 했다. 꼭 원하는 선물을 주고받기 위해 산타할아버지라는 가면 앞에서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가 다 알면서 성탄 전야에 선물을 숨기고 그 선물이 당연히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걸 의식하는 아이 앞에서 말없는 웃음을 주고받은 속임수 속에 아이는 또 잠을 설치곤 했다.
그 아이가 커서 엄마가 되고,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아 앉을 수도 없는 아가를 위해 아기의자에 비스듬히 앉혀놓고 작은 트리를 만들고 선물과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앞에 놓고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지난 몇 달 초보 엄마의 고달픔을 그렇게 스스로에게 보상하고 있는 모습 같다. 예쁜 아가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육아를 위해 시간을 몽땅 자신과 아가에게 받치는 친정엄마인 나를 위한 시간이다.
선물을 줄 수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막연하게 산타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삶에 지치고 피곤한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은 내 마음속에 어린아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를 찾아주었던 산타클로스를 생각하면서 어딘가에서 나의 피로를 이해해주고 다독여줄 썰매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산타를 그리며 스스로 산타의 길을 가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딸이 스스로가 산타가 되어서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작은 파티를 겸해 선물을 주고받는 기쁨 속에서 우리 가족이 마음껏 웃어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