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앞의 건널목에 섰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두리번거리는데 맞은편에 동의 소식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있다. 새로운 소식을 보는데 지난겨울 그 자리에 있었던 광고 문구가 생각났다.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찍어 드린다는 문구였다. 그건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얼굴 사진을 무료로 찍어 준다는 광고였다. 그 광고를 보던 날, 어머님이 생각났고, 내 지난날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생각했다.
어느 날, 팔순의 어머님이 사진을 가지고 오셨다. 경로당에서 자원봉사 나온 사진사들이 찍어준 사진이었다. 한복을 입고 화장을 곱게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가지고 오셔서 못마땅해하셨다. 사진 속 얼굴이 너무 늙어 보인다는 것이다. 예쁘게 잘 나왔다는 내 말을 외면하면서 이 사진은 버리고 나중에 다시 찍겠다고 했다. 나중이라니. 나중에는 더 나이든 모습일 텐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인데 나중은 언제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묻지 않았다. 결국,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다시 얼굴 사진을 찍어 드리지 못했다.
가끔 지난 시간의 사진첩을 꺼내볼 때가 있다. 또는 서랍이나 책장 정리를 하다 보면 느닷없는 장소에서 한 장의 사진이 불쑥 나올 때가 있다. 친구들과 어딘가를 여행 중이었거나 일상의 장소에서 이웃들과 찍은 사진이다. 대부분의 사진 속 얼굴은 웃는 모습이 담긴 것이 많다. 사진을 찍을 때면, 치즈라든가 김치 하면서 하얀 이가 드러나게 웃는 모습을 담는다. 사진이 찍히는 순간 예쁜 모습으로 남겨지길 바라는 마음이 무의식 속에서 행동이나 표정을 밝게 보이려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문득 발견한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 모습이 참 예쁘다. 10년 20년 전의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불과 2, 3년 전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거울 속 모습보다 훨씬 젊고 예쁘다. 그러나 그날은 몰랐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겹친 예쁜 얼굴이지만 그 당시에는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이기를 바라면서 사진 속 모습이 못마땅해 던져버린 사진도 많다.
오늘도 마찬가지일 테다. 내일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인데,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면서, 젊은사람을 바라보며 오늘을 못마땅해 하는 일이 허다하다. 남이 이룬 성공담을 들으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성공인데 노력 없이 살아 온 나의 지난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내 나이가 조금만 젊었으면 나도 무언가를 해서 성공할 수 있을 텐데, 라며 허세를 부려보는 일이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이 든 것을 인정하면서 가져보는 나름대로의 위로일 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면서도 젊음 날을 그리워하고 많은 나이가 공개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농담처럼, 일주일만 젊었어도 내가 막힌 벽을 뚫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어떤 일에 대해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그건, 이제는 나이 들어서 할 수 없다는 걸 의식하면서 차오르는 절망을 애써 누르는 마음일 수도 있다. 나이 들어 이제 접어 두어야 할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걸 의식하면서, 오늘 찍은 사진 속의 얼굴이 나이 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마음이다. 내가 나이 들어서 사진 속 얼굴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은 게 아니라 사진을 좀 더 예쁘게 찍어주지 못하는 너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아직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도 많이 남았다고 정당화시키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젊고 예쁜 날이 되기는 어렵다. 어머님이 사진 찍던 날 어머님의 말씀에 어이없어했지만, 나 역시 그런 말들을 수없이 뱉어왔다. 지금 보다 내일 더 잘할 수 있다고 오늘의 모습을 외면하는 날이 아마도 많았을 것이다. 그걸 의식하려 하지 않고 덮으며 내일을 굳게 믿지만, 우리에게 마음에 꽉 차는 만족의 시간이 오기는 어렵다. 그날은, 늘 기다려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생에 최고의 날은 지나갈 수도 있다. 젊음이 사라진 지금, 지금 이 시각이 가장 아름다운 날일 수도 있는데, 그게 인정이 되지 않는다.
욕심은, 끝이 없다. 오늘이 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임을 인정하라고 하면서,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네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지금일 수도 있는데, 나는 내일 찍은 사진이 더 예쁠 거라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