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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Nov 24. 2022

쓸모

쓸모


쓸모



만보 걷기를 위해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던 여인들을 스치듯 지나가는데 뒤에서 커피를 들고 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우리 엄마는 자기가 쓸모없는 인간인 줄 알았는뎨, 쓸모가 있대. 80 넘어 무슨 쓸모가 있겠어. 자기는. 다른 노인이랑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지. 똑같은데."

차마 뒤돌아보지 못했다. 쓸모 많은 여인네들의 그 말에 동의를 못하지만  나도 나이 들어가면서  그리 쓸모 많은 사람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다.


머리카락에 윤기는 사라지고 점점 흰머리가 되어간다. 미용실에 갔다.  원장의 언니가 왔고, 둘은 엄마 이야길 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엄마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거다.  누군가에게 물건을 보내줘야 하는데  주소가 틀림없이 공책에 있을 텐데 없다고 그런단다. 이 년 전에 메모되어 있는 걸 자기가 틀림없이 봤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매사에 정신없이 엉뚱한 소리를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게 말한다.  현재의 자기 수준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며 왜 그렇게 엉뚱한지 모르겠다고 언성을 높이는 그녀에게, 이년 전에는 어머님이 판단력이 좋았겠지만 어르신에게 이 년은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엄청남 변화가 올 수 있는 시간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대신 어머님의 연세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 나이를 물으니, 잠시 망설이다가 80이 넘었는데 자기도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엄마 나이도 모르겠단다. 거봐라. 너도 나이 먹어가니  이제는 엄마 나이도 잊고 사는데 나이 많은 엄마는 얼마나 많은 걸 잊고 살겠니? 엄마를 이해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마음 한 구석에선, 나 역시 젊었던 날에는 내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말들로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을 거란 생각이 드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나도 60대의 중반이 넘어섰다. 딸 집에서 손녀를 돌보고 살림을 해주는, 이 쓸모가 내게 얼마나 지속될까? 이기적 계산으로 쓸모의 기준이 함부로 떠도는 세상 이야기에 우울하다.


이제는 쓸모없는 시간을 향해 걸어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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