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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미 Nov 18. 2023

이룰 수 없는 꿈이

간현의 소금산 그랜드밸리(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를 가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로 시작하는 노래의 제목은 가수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이었다. 우리가 젊었던 날 유행했던 노래다. 아직도 애틋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 노래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라는 가사가 산 아래 울려 퍼진다. 가을의 주말 오후는 관광객으로 붐볐고 노래는 적당히 사람들 시이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래는 사랑이야기지만 가사의 한 부분은 지나간 삶의 이야기로 들렸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나, 그 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운 그리움을 그리움을 생각한다.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도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숲길을 걸었다. 사람들에게는 가고 싶었던 꿈길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소녀 시절에는 이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을 법도 한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시대와 달랐던 잘 살지 못하는 나라의 시골소녀로 자라면서 경험이나 보는 시야가 좁았으니 거대한 꿈은 꾸지 못했어도 그 나름대로 나이에 맞을 만큼의 무언가를 생각하기는 했겠지. 그러나 현모양처라는, 나보다는 가족에게 희생하고 효도하며 참고 살아야 하는 여자의 생을 먼저 배웠는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학습되면서 생은 성장했고 나를 찾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건 아닌지. 여고시절의 교훈은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였다. 참된 일꾼으로 사회 속에서 나를 찾아가기보다는, 착한 딸로 자라 어진 어머니가 되는 법이 더 먼저 나를 지배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내 삶에서 나는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야 자립의 힘이 없었으니 부모님의 능력만큼 에서 살아야 했고,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나를 위한 개발이나 마음을 성장시키는 저축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 시절의 딸들은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남자 형제를 공부시키기 위해 딸은 가사노동을 하거나 공장으로 돈 벌러 나가는 자식들이 많았던 세상이었으니까. 결혼 후에도 시집을 위해,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살아야 했다. 물론 그러지 않은 주부들도 많았겠지만 다른 생활 속으로는 나서지 못했다.  생활이 어려워도 내 경제보다는 성씨가 같은 사람들의 행사에 내 주머니를 흔들어 터는 일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 속에서 이미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 내가 무슨 꿈이라도 꾸며 살았던가 하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중년의 어느 날에 만난 게 일기 쓰기였다. 방어기제가 필요했던 걸까?  외부활동조차 하지 않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집안에 매여 있던 날이다. 힘들지만 치매 어른에게 느끼는 연민 같은 감정을 몇 줄로 적었고, 가족들에게 서운함을 적으니 마음이 풀리던 시간들이었다. 쓰기는 읽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게 했다. 한창 유행처럼 생기던 체인점인 책 대여점 '깨비책방'이 아파트 앞에 생기고 단골손님이 되었다. 주로 박완서의 소설들을 읽었던 건 노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많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이야길 읽다 보면 어른을 이해하는 힘이 더 생길지도 모른다는 작은 계산으로 이어지던 독서 시간은 책을 더 읽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게 했고, 그 욕심은 발길을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도서관에서 어느 교수님이 말했다(정년을 앞둔 화가분 이셨다). 나이 든 주부들이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며 인문학 강의실이나 실기교실을 드나든다. 그건 먹기 살기 힘들었던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칭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린다던가, 일기를 잘 쓴다던가, 그런 칭찬을 들었던 일들을 사느라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남들보다 조금 더 있었던 그 소질들이 은연중에 나타나고 나이 들어서 다시 그 일을 시작하는 주부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며,  하고 싶은 걸 지금이라도 다시 꺼내 노력해 보라는 말씀이셨다. 살다 보니 나이 들어서 하고 싶은 걸 욕심내고 내 이름을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걸 늦게 깨달았지만 이름을 잊고 살아가는 주부들에게 해 주는 그 다독임이 좋았다. 문예반 활동을 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동호회를 기웃거리면서 내 이름을 찾아갔다. 오랜 기간 지쳐있던 마음에 생기가 돌 무렵, 돌연히 찾아온 손님은?  살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건강이다. 나를 찾아온 암을 다독이려 다시 내 생활을 바꿔야 했다. 치료를 위해 외출이 줄어들었다. 뭘 잘못했는데? 희생한다고 생각했던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내 잘못일까?  책임져야 할 내 몫은 후회와 반성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거울 속 모습에 눈물조차 나오지 않던 날들이 흘러갔다. 몸이 힘들어서 책도 덮었고, 일기쓰기도 손을 놓아 버렸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다시 시작하려 하니 그 또한 쉽지 않다.


건강을 찾기 위한 발걸음이 산책길로 나섰다. 산책은 둘레길을 걷고 가벼운 산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만난 간현의 둘레길과 소금산 밸리의 잔도길을 걸으며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누구에게나 잊힌 계절은 있겠지. 그리고 이루고 싶었던 꿈도 있었겠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다 보니 그 노래가 유행이던 젊은 날은 생각나는데 그 시절 나는 무슨 꿈을 꾸며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의 교훈 중에서 "착한 딸"과 "어진 어머니"가 내 삶에 우선순위였을까? 그럼, "참된 일꾼"이 되기 위한 노력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새로운 걸 욕심 내기보다는 내 위치만큼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중년의 어느 날 방어기제처럼 찾아와 나를 위로했던 그날을 떠 올려보는 시간이다.  요즈음은 맞벌이하는 딸과 함께 살며 손녀를 돌보고 있다.  자유시간은 적고 아이 돌보며 살림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돋보기 쓴 얼굴에 비문증까지 찾아와 힘든 나날이지만 일기 쓰는 날들을 조금만 더 만들어봐야겠다.  늦게 찾은 작은 꿈이지만 그게,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길 바라본다.


출렁임이 무서우면서도 걸어보고 싶어 찾아간,  원주 간현 소금산 그랜드밸리 출렁다리 (202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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