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장

by 이순미

가족 단톡방에 동생이 지난 시간 속 어느 날의 일기장을 올렸다. 간단하게 쓴 일기는 팔순이 넘은 친정어머니에 관한야기였다. 엄마가 아파 마음 아프다거나 아픈 엄마 때문에 남동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마음 아프다는 글이다. 몇 줄의, 휘갈겨 쓴 글자들을 읽으려 마음을 집중해서 읽는다.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들 마음을 후벼 판다. 가족들의 답글에서도 아파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이 읽힌다.


혼자 쓰는 일기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독백의 일기에는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적힌다. 어쩌면 실제보다 더 아픈 감정을 담은 문장들이 적힐 수도 있다. 글이란 집중해서 쓰다 보면 격한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감성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날의 진실된 감정의 기록이 혼자 쓰는 일기다.


오래전, 국민(초등) 학교의 검사받기 위한 일기 쓰기에서 시간이 흐른 후 소녀시절의 지극히 여리고 감성적인 마음을 솔직하게 일기로 적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고 싶은 순수한 소녀시절의 일기장은 사라지고 없다. 버리거나 태워버린 기억도 없지만 사라진 노트들이다.


인터넷에 일기 쓰기를 시작한 건 40대의 중년이 되어서다. 이런저런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부대낄 때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삭혀야 할 감정들도 많다.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이 쌓다 보면 어느 날 필요 이상의 화풀이가 되어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내성적인 성격은 그런 감정을 친구나 이웃에게 풀어놓지 못한다. 일기는 그런 감정들을 풀어놓은데 아주 제격이었다. 누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니 체면이나 뒷감당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대로 막 적어가는 문장은 속에 있는 솔직함이 마음속 응어리가 그대로 배출되어 작은 시원함을 준다. 인터넷 일기 쓰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써 놓고 덮어 놓은 많은 일기들. 오래된 일기를 가끔 읽어보는 시간이 있다. 새록새록 그때의 사건들이 그대로 기억나는 것도 있고, 세상에 내가 그런 감정을 가졌었단 말이지? 하면서 성숙한 해결에 기특하기도 하고, 철없는 감정에서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내가 쓴 문장이 맞을까? 싶게 잘 쓰인 문장을 보면서 놀라기도 한다. 물론 유치한 문장도 있고 별 것 아닌 일로 삐져서 우왕좌왕 속앓이를 한 문장도 있다. 지나간 시간의 솔직한 감정을 읽어 내려가는 일은 재미난 나의 역사시간이기도 하다.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잘 이겨내고 잘 다스리며 살아왔다.


단톡방에 올라온 동생의 일기를 보면서, 병상에 누워있는 아픈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니 엄마의 역사에 대해서는 참 무심했던 것 같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요양병원 면회가 자유롭지 못하다. 어머니와의 대화 시간이 없다. 면회를 하더라도 이제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와서 어머니의 지난 시간 이야기와 감정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너머, 어린 나이의 딸의 시선에서가 아니라 자식들의 인생을 걱정하며 살아온 지난 시간 어머니 마음속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걸 기록해서 우리 가족이 함께 나누고 싶다. 같은 사건의 이야기라도 어머니의 입장에서와 철없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이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어머니의 생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그동안 어머니의 마음을 잘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프다.


지나간 나의 일기장을 뒤적인다. 간간이 어머니의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주로 내가 살면서 힘들었던 감정이 많이 적혀있다. 어머니에게 매달리는 일은 많았지만 엄마의 생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이 없다. 늘 받기만 하고 살았다. 병상의 어머니를 보면서 아파하는 동생이 끼적인 몇 줄의 일기장을 보니 마음 아프다. 가난한 나라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섯 남매를 키우며 선생님의 아내이기보다는 농사일에 시달리는 시골 아낙으로 보릿고개를 넘어온 어머니 생의 이야기를 이해하며 들어준 적이 없다. 때로는 어머니도 삶이 힘들거나 누군가와 마음속 깊은 이야길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어머니 앞에서 나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딸로만 살았다. 죄송한 마음만 남는다.


병상에 홀로 누워있는 지금 이 시간, 기억 너머 저 쪽에 남아있을 어머니의 오래된 일기장 이야길 듣고 싶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길 들어준다는 건 마음을 위로 받는 시간이기도 할텐데. 80년이 넘는 세월의 이야길 들으며 어머니의 작은 손을 잡고 조금이라도 그날의 아픔을 위로해 드리고 싶댜. 이야길 나누지 못하는 현실이, 눈물 글썽이는 어머니의 두 눈을 사진으로만 바라보아야 하는 오늘이 참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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